‘삼다도(三多島)’라 불려 온 제주에는 돌, 바람, 여자 말고 많은 게 또 있다. 바로 책이다. 인구 대비 도서관 수 1위를 자랑하는 이 희한한 섬에는 공공도서관만 15곳이 존재하며, 현재 상호 협력망을 구축해 하나의 회원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작은도서관만 55곳이다. 제주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제주 독립서점 지도’에 표시된 서점은 약 70곳, 게다가 육지에서도 쉬이 찾아보기 힘든 그림책도서관, 점자도서관까지 있으니 가히 ‘책의 섬’으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의 섬에서 약 30만 권으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한 곳, 빼어난 자연 풍광을 자랑해 ‘숲속 도서관’으로도 불리는 곳, 제주특별자치도 한라도서관이다.
제주시 중부 지역 주민들의 오랜 문화 갈증을 해소하고자 2008년 11월 13일 문을 연 한라도서관은 미처 들어서기 전부터 이색적인 환대를 건넨다. ‘숲속 도서관’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푸르른 숲과 정원을 지나며 피톤치드를 듬뿍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기 좋은 도서관이라니 어색할 지경이지만, 한라도서관은 도심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앞뒤로는 올라올레길, 지근거리로 방선문 계곡 및 여러 한천(漢川)과 건천(乾川)을 만나볼 수 있는 귀한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그러므로 그저 이어폰 꽂고 공부 삼매경에 빠지거나 책만 후다닥 빌릴 요량은 여기서는 접어두길 권한다. 입구 왼편에 있는 소나무숲에 들러 산책을 즐기거나 주변에 조성된 텃밭과 자연체험 학습장, 정원, 연못 등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 특히 소나무숲에는 ‘솔향정’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도서관’이 있으니 방문해보자.
2008년 창의성과 예술성에서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대상을 받은 한라도서관의 건축은 2004년 제주시에서 실시한 현상공모에서 당선한 김건축의 작품이다. 당시 김건축이 도서관 설계의 모티프로 삼은 것은 제주도의 유별한 지형적 형상인 ‘굼부리(화산 분화구)’ 혹은 ‘굴렁(땅이 움푹 파인 곳)’을 도서관에서 느낄 수 있도록 공간에 녹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형상은 과거 탐라국 개국 성지인 삼성혈에서도 발견되는데, 마찬가지로 제주 무속에서 역시 신처와 신당, 성소는 산마루가 아닌 아래쪽 오목한 곳에서 발견된다. 김건축은 제주적 원형 공간을 건축으로 살려냄으로써 새 도서관임에도 제주인들이 풍토적 선험을 느끼길 바랐다. 외견상 크게 세 동으로 알아볼 수 있으며 중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자료실, 제주문헌실이 지하에 위치한 것은 이러한 의도를 직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설계들이다.
한라도서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남로 221
064-710-8666
lib.je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