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두 잠자는 밤중이었습니다. 절간에서 밤에 치는 종소리도 그친 지 오래된 깊은 밤이었습니다.”
까만 밤, 말 그대로 반짝이는 별 말고는 눈에 띄는 것이 없는 그런 고요한 밤에 단발머리를 한 아이가 언덕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째서 혼자 나와 앉아있는 걸까? 문득 아가 숨소리 보다 가늘게 속살속살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듣노라니까 그것은 담 밑에 풀 밭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풀밭에 누가 숨어든 것인가 싶어 아이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살금살금 향한다. 행여 알면 안 되는 일인데 공연히 참견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궁금하다. 마침내 아이는 풀밭에서 보랏빛 치마를 입은 조그만 앉은 뱅이꽃의 혼과 보라 옷을 입은 진달래꽃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뿐인가. 복사꽃, 진달래꽃, 개나리꽃, 할미꽃에 이르기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던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다. 꽃들은 꾀꼬리가 목이 아파 독창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소식에 좋은 꿀을 한 그릇 담아 약으로 쓰라고 일러주고, 5월이 오는 줄 모르고 잠자고 있던 꽃과 벌레를 깨워 놓고 왔다는 다리 긴 제비에게는 애썼다고 치하하며 이슬술을 한 잔 내어 준다. 시계가 두 점을 치는 소리가 들릴 즈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나비들은 무도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는데, 다들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느냐고 묻는다. 무슨 대단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온갖 꽃들과 새, 나비들이 하나같이 기대에 부풀어 분주한 것일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은 ‘내일은 날이 좋을 것이다!’고 일러주는 것 같이 반짝반짝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하게 평화롭게 5월 초하루의 새 세상이 열리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5월 초하루”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니 무엇인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버들잎과 잔디 풀이 물에 갓 씻어 낸 것처럼 새파랗게 보일 만큼 일 년 중 가장 선명한 5월 초하루의 햇볕. 그 거룩한 햇볕이 비치기 시작하면 온갖 새들이 일제히 5월 노래를 부르고 나비들도 너울너울 춤을 춘다. 모든 것들로 하여금 벅찬 즐거움에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하는 이날이 바로 5월 초하루,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인 것이다.
5월 초하루
이처럼 비밀스럽고도 신나는 일을 앞둔 설렘이 가득한 『4월 그믐날 밤』을 쓴 작가가 방정환 선생이라는 단서를 얻게 된다면 각양각색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학수고대하던 5월 초하루가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4월 그믐날 밤』은 우리나라의 모든 어린이가 생일만큼 기다리고 좋아하는 어린이날을 상징한다. ‘어린이’라는 존엄한 존재들의 가치를 드디어 인정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날인 것이다.
어린이날은 단지, 하루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휴일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어린이다운 대접을 받으며 즐겁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리는 축제일이다. 요즈음 많은 어린이들은 방정환 선생이 누구인지, 어린이날이 왜 필요했는지, 어째서 특별한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이런 날을 제정해 존재를 기려야 할 필요가 있는지를 의아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책 말미『어린이』 1926년 5월호에 실린 방정환의 글 「어린이날」을 보면 불과 100여 년 전 우리 사회가 어린이들을 어떻게 여기고 대우했는지 잘 드러난다.
“참담한 중에 더 참담한 인생이 우리들 조선의 소년 소녀였습니다. 학대받았다 하면 오히려 한몫 사람값이나 있었다 할까. 갓 나서는 부모의 재롱감 장난감 되고, 커서는 어른들 일에 편하게 씌우는 기계나 물건이 되었을 뿐이요. 한몫 사람이란 값이 없었고 한몫 사람이란 수효에 치우지 못하여 왔습니다.”
과거에는 아이 한 명을 사람 한 명으로 여기지는 않으면서, 일손으로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니 방정환은 「어린이날」에 “우리의 어림은 크게 자라날 어림이요 새로운 큰 것을 지어낼 어림”이니 “어른보다 10년, 20년 새로운 세상을 지어 낼 새 밑천을 가졌을 망정” 결코 어른들의 소유물처럼 여기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른들보다 더 큰 잠재력으로 미래를 일굴 가치 있는 존재로서 어린이를 인정하면 이들이 “마치 5월 햇볕같이 찬란하고 5월 새잎같이 씩씩하고 또 5월의 샘물같이 맑고 깨끗”한 기세로 마침내 조선의 희망이 될 것이라 선언한다. 겨울을 이기고 지천으로 핀 꽃, 초록이 한껏 오른 나무처럼 “기울어진 조선에 새싹이 돋기 시작한 날” “조선의 어린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은 날”이기에 방정환은 5월 초하루를 거룩한 기념의 날로 정한 것이다.
새싹들을 위하여
작품해설에서 방정환연구소 소장 장정희는 어린이날이 처음생길 무렵인 백여 년 전만 해도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어 자식을 부를 때에도 ‘애 녀석’ ‘애 놈’과 같이 천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김기전, 방정환과 같은 사회지도자들은 어린이 해방 운동을 시작했고, 이들에게 배우고 즐기고 표현하며 자유롭고 기뻐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우리는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도 아직 그믐날 밤에 머무른 채 5월 초하루의 밝은 햇살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도처에 있다. 우리가 100년 전 어린이 해방 운동의 정신만 기억했다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아동폭력과 학대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대중은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방임을 방지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학대 범죄를 자행한 이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공분한다. 법안에 억울하고 슬픈 죽음을 맞이한 작은 아이의 이름을 붙여서 잊지 않으려는 노력도 하지만, 법안보다 더욱 시급한 것은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4월 그믐날 밤』에서 온갖 꽃들과 새와 나비들이 함께 ‘5월 초하루’라는 새 세상을 열 때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응원하던 조화로운 모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의 폭력뿐만 아니라 또래 안에서도 각종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는 성적과 성과를 우선시하며 가르치고 양육한 어른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으며, 이것 역시 아이들에 대한 방임이자 학대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 또한 지금과 같은 자유와 권리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는지를 안다면 이를 더욱 자유롭게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책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