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las of Life : 삶의 아틀라스
태도와 경륜이 교차하는 곳
에디터 지은경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언젠가부터 우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호기심을 갖지 않는다. 원한다면 언제든 돈을 지불할 수 있는 물질 풍요의 시대에 흔한 물건의 제작 과정쯤이야 궁금해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만 굴러간다. 하지만 생활에서 사용되는 작은 물건들의 제작 과정을 우연한 기회에 살펴보게 되면, 심지어 그것이 매우 하찮은 이쑤시개나 신발 끈에 불과할지라도,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각과 개념을 열어준다. 그 과정에는 나름의 철학과 과학, 그리고 역사로 이루어진 노하우, 그리고 우수한 재료의 서사가 깃들어 있기 마련인데, 하물며 훌륭한 전통을 이어오는 장인의 아틀리에 안에서 흐르는 시간은 오죽할까. 그중 최고의 재료를 다루어 한국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공간을 찾아가 보았다..
유기-명절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집에서는 유기그릇을 사용했다. 그래서 집집마다 제사 전 날 며느리가 밤새 유기그릇을 마른 짚으로 닦느라 고생한 서러운 일화 하나씩은 있다. 유기(鍮器)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한 청동에 아연을 합금한 황동의 일종으로 ‘놋’이라고도 한다. 구리를 기본으로 하는 비철 금속계의 합금으로 청동기시대부터 만들어 전해진 한국의 전통 재료다. 중국은 유기를 ‘신라동’이라고도 일컬을 정도로 신라시대 청동 합금기술은 발달해 있었다.
유기그릇이 만들어지는 현장은 근대의 어느 어두운 대장간을 연상시킨다. 사람의 섬세한 손길을 거친 수많은 과정을 통해 유기그릇이 탄생하는 광경은 마치 역동적으로 잘 짜인 군무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구리와 주석을 78:22의 비율로 섞어 1300°C의 온도에서 녹인 후 망치로 두들기는 것을 방짜 유기라하고, 흙으로 틀을 짓고 부은 후 깎아 만드는 것은 주물유기라 한다. 유기그릇은 높은 열처리와 망치질, 담금질을 반복하며 은은하게 반짝이는 금색의 빛을 드러낸다. 또한 유기를 무언가로 살짝 두드리면 청명하고도 섬세한 음이 넓고 길게 울려 악기나 종으로도 만들어진다. 유기의 주 성분인 구리는 바이러스 살균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최근 들어 식기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