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21
도와줘요, 유대인 엄마!
글.최재천
“내겐 새 책이 있고, 책이 있는 한, 난 그 어떤 것도 참을 수 있다.”
_ 조 월튼
근래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저기 멀리 보이는 빌딩까지의 거리” “한강을 건널 때 보이는 한강의 폭”이 궁금할 수 있지 않느냐며,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호기심을 뿜어낸 이가 있다. 본업은 과학자요, SF 소설가로서도 오랜 세월 많은 작품을 선보인 곽재식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과학 교양서, 괴물 관련 인문 교양서, 글쓰기 에세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곽재식 작가의 온갖 출간작들은 어쩌면 그런 ‘궁금함’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곽재식 작가의 왕성한 집필력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서 ‘곽재식 속도’라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TV를 보며 그저 크게 한번 웃고 넘어갔을 ‘곽재식의 궁금함’은 작가로서 그를 진지하게 대표하는 한가지 키워드일 것이다.
그의 궁금함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곽재식 작가의 단편소설「숲 속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12년에 썼으니 10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고, 2017년에야 소설집 『토끼의 아리아』에 수록되어 정식으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던 작품이다. 내가 곽재식 작가의 많은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자, 무슨 질문을 하건 해답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질문을 하겠는가. ‘도대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은 다 무슨 소용이며, 인생이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같은 대단히 철학적인 질문을 해야 할 것 같기도 한데, 여러 생각 끝에 소설 속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큰돈을 쉽게 벌 방법이 있겠습니까?”
어처구니없는 질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절대 고민 없이나온 것이 아니다. 결국 저런 질문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괜히 심오한 인간인 척 으스대고 싶은 마음에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가 그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듣고 나면 결국 마음만 복잡해질 테고, 잘못하면 수염 기르고 흰옷 입고 다니면서 도 닦는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거나 미쳐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그럴 바에야 회사는 가기 싫지만 돈은 필요하니, 차라리 대놓고 돈을 어떻게 벌지 물어봐서 돌아오는 답이 좋으면 따르고 아니면 말면 되지 않겠나 싶어서다. 듣다 보니 제법 말 된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소리만큼이나, 한 마디 대답으로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되니 말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어떤 질문인지가 아니라, 그 질문을 누구에게 하는가이다. 주인공이 해답을 구하는 대상은 어느 숲 속의 컴퓨터다. 그것도 폴란드 숲 속의 아주 낡은 구형 컴퓨터. 이 오래된 컴퓨터는 오래전 옛 소련에서 미국 실리콘 밸리를 따라잡기 위해 컴퓨터 기술을 발전시키려고 시행한 비밀 프로젝트로, 17년간의 정보 처리와 학습을 거치다 자의식을 가질 정도로 향상되어버렸다. 무슨 질문에도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엄청난 컴퓨터가 된 것이다. 한편 주인공은 위의 질문에 대한 컴퓨터의 조언대로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게 된다. 이후 이야기는 컴퓨터를 이용해 더 많은 돈도 벌고 사랑도 이루고 악당도 무찌르려는 주인공과, 그런 주인공을 이용해 오히려 자기의 목표를 이루려는 컴퓨터의 두뇌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 싸움의 결과야 소설을 끝까지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독자에겐 다른 궁금함이 남는다. 근래 주식 열풍을 보고 있노라니 특히나 그렇다. 과연 끝내 자유로워지게 되는 존재는 누가될까? 어쩌면 큰돈을 쉽게 벌 방법을 질문하면서부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는 요원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담 모든 걸 대답해줄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면 나는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혹은 나도 모르게 질문하게 될까? 10년 전부터 이것을 궁금해 하던 곽재식 작가는 적당한 질문을 찾았을지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