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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6

‘콸콸콸’ 쏟아지는 ‘썰전’

Editor. 김지영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유재필 지음,배성태 그림
아름다운강산

동네 술집에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술 한잔을 하고 있었다. 한참 과거 이야기를 하며 깔깔거리던 중 한 친구가 내게 갑자기 물었다. “지영이가 원래 말이 없나?” 나는 물음을 던진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의 분위기를 망치고 있는 건가?
사실 친구는 별 의도 없이 물어봤다. 분위기를 망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없이 앉아 있는 내가 걱정이 돼서 물어본 거였다. 대화에 끼게 하려고 질문을 했던 것뿐인데 오히려 내가 입을 더 꾹 다물어버려 물어본 친구만 민망해졌다.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는 구구절절 저자의 경험담을 풀어놓는 흔한 에세이가 아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원체 말이 없는 ‘재필 씨’가 자신이 겪었던 상황 속에서 느낀 의식의 흐름을 글로 옮겨 쓴 책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졸’ 새는 게 아니라 ‘콸콸콸’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저자의 입담이 거침없고 유머러스한, 가감 없는 ‘썰전’에 가깝다. 내지에 일러스트나 다량의 사진을 수록하지 않았지만, 한 부가 끝날 때마다 적절한 일러스트를 끼워 넣어 단조롭지 않다. 또 내지 초반에 표지의 이미지와 ‘아.. 원래 그렇게…’와 ‘말이 없는 편은 아닌데’라는 문장을 각각 한 지면씩 할당해 마치 영화처럼 장면이 바뀌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 순간, ‘재필 씨’의 당황스러움과 버벅거림이 그대로 전달된다.
독립출판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센스를 발휘했다. 심금을 울리는 문구나 감각적인 묘사를 선보이지 않는, 그림도 별로 없고 색감도 단출한 책이지만, 말 없는 ‘재필 씨’가 ‘콸콸콸’ 쏟아내는 ‘썰전’만으로도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