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친애하는 나의 정원에게

에디터 : 전지윤, 정재은, 김수미

기원전 4000년,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 자리했던 역사 최초의 도시 우르크는 3분의 1이 정원과 공원이었다. ‘루스 인 우르베rus in urbe(도시 안의 시골)’라 불린 이 공간은 자연과 분리된 사람들의 삶을 보상하고자 마련된 것이다.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고 병들면 누구든 자연을 찾게 된다.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가려졌으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자연과 동떨어져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나 공포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을 닮은 정원을 만들며 끊임없이 자연을 그리워한 것이 아닐까? 2050년 무렵이면 전 세계 인구 3명 중 2명은 도시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유엔인구국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인간이 본디 자연의 일부라는 연결감을 잊지 않기 위해 나만의 정원을 갖는 일은 더욱 소중하고 중요한 일이 되어간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멋진 정원 한 곳을 마음에 품게 하거나, 작은 화분 하나라도 예쁘게 가꾸고 싶어지게 하는 정원이야기들을 모았다. 지금, 나만의 정원으로 걸음 해보자.
1-식물, 인간 친해지길 바라
“식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이 하나 없어도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작은 알뿌리가 가진 힘을 생각한다. 이 둥근 생명체로부터 만들어질 잎과 꽃, 열매와 씨앗, 그리고 꽃과 열매를 향해 모여들 동물과 인간, 그 놀라운 힘을 떠올리면, 내가 그리는 이 풀꽃 한 송이가
하나의 행성처럼 느껴진다.”
_이소영, 『식물과 나』 중

팬데믹으로 인해 바쁜 일상으로부터 단절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되자 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의 의미와 가치를 이전보다 더 높이 여기며 자연을 동경하게 되었다. 반려식물이나 플랜테리어 등의 트렌드와 함께 정원을 가꾸고 꾸미는 가드닝gardening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다 보니 외출 시 자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동경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회귀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에 수록된 글 「녹색 비타민: 현대인의 필수 영양소」에서 이주영은 현대 도시가 정신질환의 온상일 수밖에 없으며 ‘녹색 자연’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했다. 인류의 진화 시계를 24시간으로 보면 현대 도시는 겨우 3.6초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재가 그토록 대단하게 느껴질지라도 이는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눈 한 번 깜박하는 정도의 찰나일 뿐인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교만하게 자연을 대하고 있지만 우리도 하나의 지구 생명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자연의 귀중함을 깨닫고 함께 하려는 요즘의 변화들에 그나마 안도감을 느낀다.

생기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휴식을 주는 평화로운 공간이라 하면 정원의 의미와 효용을 충분히 설명한 것일까. 『정원의 발견』에서 오경아는 정원이란 식물이나 바위, 물과 같은 자연의 물성을 최대한 이용해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의 공간이라 했고, 『365일 꽃피는 정원 가꾸기』에서 정계준은 산과 숲, 계곡과 강과 같은 자연을 끊임없이 찾고 동경하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갈구를 충족시키는 곳이 바로 정원이라고 말했다.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에 수록된 대담에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성종상은 정원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의 이상과 신념이 표현된 장이자 예술과 도덕, 그리고 윤리를 기르고 실천하는 장이며 최근에는 치유와 회복, 보살핌과 나눔, 그리고 참여와 소통의 가치까지도 포용하는 장소”. 그러므로 직접 가드닝을 하는 것이나 정원을 향유하는 것 모두 인류가 자연을 동경하면서 진정으로 행복해지고자 하는 하나의 해결방안인 셈이다.

2-자연을 닮은 다섯 계절의 정원
어떤 날, 나는 이런 지루함을 느꼈다. 봄에는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벚꽃 잎이 떨어지며 여름이 다가오면 철쭉과 장미가 피고 가을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다. 과연 이게 전부인가? 봄이 되면 야생화가 지천으로 펼쳐지는 곰배령도 있고 자작나무가 가득한 숲도 있는데 거리와 공원들의 식생은 왜 이리도 단조로운가. 그래서 도시의 공원과 정원이 만드는 일상적 풍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식물에 바라는 것은 단순하고 폭력적이다. 도시의 가로수는 최소량의 낙엽을 위해 무자비하게 가지치기 된다. 가로변에는 돌보지 않아도 일 년 내내 푸르도록 초록색 관목류를 심는다. 비슷하게 잘 관리되는 비슷한 꽃들이 동시에 피고 진다. 유사한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은 아파트가 만들어내는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애쓰면서 관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잔병치레 없이 둔감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면 더욱 좋다. 마치 식물을 향해 너는 절대 변하지 말고 늘 그 자리에 영원토록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정원이 우리가 꿈꾸던 정원일 수 있지만 야생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죠.”

인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일상적으로 만끽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들판의 꽃과 나무와 돌을 주워 집 안에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들은 꽃이 더 오래 피어 있길 원했고 꽃송이가 더 크고 화려하기를 바랐다. 정원의 장식미는 점점 극단으로 치달았다. 품종이 개량되고 아름다운 식물은 국경을 넘더니, 이제 종자는 국가경쟁력의 상징이 되어 고부가가치 산업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정원의 감상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식물을 관찰하는 법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죽지 않는 정원의 지루함을 깨달아야 한다.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의 ‘자연주의 정원’은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전혀 다른 감각의 정원을 보여준다. 그는 공공정원의 디자인 설계를 통해 미래의 정원을 제시하는 이 시대 가장 독보적인 예술가다. 보통의 예술가들은 미술관이나 공연장, 영화관을 통해 자신의 신작을 발표하지만, 그는 식물을 재료 삼아 세계 곳곳의 도시와 대지에 작품을 발표한다. 계절과 토양과 기후에 따라 늘 변화하는 그의 작품들은 미술관 수장고에 보존 될 수가 없다. 관람객은 단 한 순간도 같은 작품을 감상할 수 없다. 한 번 그의 정원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정원을 완전히 보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의 작품은 자연 자체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연이 아니다. 그의 정원을 둘러보는 투어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코로나 시대가 들이닥쳤다. 앞으로 그의 정원을 직접 감상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울산 태화강 국가 정원에 그의 정원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하니,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식물들의 배역을 구성하고 무대에 올리는 일, 그게 바로 내가 하는 일이에요. 식물들을 무대에 올려서 마음껏 연기를 펼치게 하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섯 계절: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Five Seasons: The Gardens of Piet Oudolf)〉은 새로운 시대의 창작자들을 자극하는 깊은 영감으로 가득 차 있다. 새로운 시대의 창작자란 전 지구적인 기후 변화 속에서 자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자다. 전통적인 식재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피트 아우돌프는 젊은 시절부터 개인 정원이자 육묘장이 있는 네덜란드 후멜로Hummelo에서 다양한 여러해살이풀과 야생화를 키우고 연구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새로운 식물들을 찾아 긴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가을로 시작해서 다시 가을까지의 다섯 계절을 다룬다. 그는 우리를 가을의 정원으로 안내한다. 가을의 정원은 낯설다. 초록이 지나간 자리를 대신한 갈색의 그라스들이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고혹적인 가을꽃과 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가을 정원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식재하고, 다가올 겨울이 곧 죽음의 계절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3-나는 풍요로웠고, 정원은 달라졌다
자그마한 텃밭이나 화초라도 가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상당한 노력과 체력, 매우 섬세한 관찰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잎이 마르거나 시들지는 않았는지, 공간이 너무 좁지는 않은지, 다른 잡초들에 양분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면밀히 파악한 뒤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 어쩌면 끝이 보이지 않는 노동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금보다도 귀중하다는 현대인들은 무슨 이유로 각자의 크고 작은 정원에 시간을 쏟는 것일까? 아무리 작은 자투리 땅일지라도 자신이 꿈꿔온 색과 향기로 공간을 채우는 경험은 근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작은 공간의 창조주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들 수 있다. 대문호 헤르만 헤세조차 자신이 창조의 기쁨과 우월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순간은 다름 아닌 정원을 가꿀 때라고 했으니 말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 치료사인 수 스튜어트 스미스SueStuart-Smith는 『정원의 쓸모』에서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가드닝이 우리에게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이야기한다. 햇빛, 운동, 흙과의 접촉은 무뎌진 신경계가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원에서 용인되는 파괴적인 행위, 이를테면 가지를 치거나 땅을 파헤치거나, 바랭이 풀을 뜯어내고 쐐기풀을 뽑는 등의 일들은 감정이 정화되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안기기도 한다. 자신만의 정신적 공간을 제공하고 현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주는 가드닝의 효과는 오늘날 심리 치료적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정원 가꾸기가 인간에게 수많은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짚어볼 문제가 있다. 그동안 우리가 정원을 사랑해온 방식이 정원에는 대체로 이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 속 정원은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때로는 파괴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적합한 기후에서 완벽한 잔디밭을 만들려고 막대한 양의 물을 소모했고, 수많은 화학물질로 토양을 오염시
키기도 했다.”
_수 스튜어트 스미스, 『정원의 쓸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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