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8

추리면 어떠하리, 동화면 어떠하리, 재밌으면 좋은 거지

Editor. 지은경

복잡한 것을 하나하나 따져가며 풀기를 좋아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의 원인과 과정, 결과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만 이 세상 추리소설들은 제 능력 범위를 넘어설 때가 더 많더라고요.

『구미베어 살인사건』 dcdc 지음
아작

사실 추리나 SF는 소설보다 영화나 드라마로 즐기는 편이다. 나이가 드니 책 읽는 자세를 오래 유지할 수 없어 자기 전 침대에 옆으로 누워 독서를 하는 편인데, 이러한 소설들은 밤에 읽기엔 무섭고 풀리지 않는 의문들 때문에 책을 중간에 덮지도 못하겠다. 만약 덮을 경우 꿈속에서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쉽고 편한 영상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계속 영상에만 맡기게 되면 이야기가 하도 빨리 전개되는 탓에 필수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면 영화는 시시해지고 재미없어진다. 원작을 창조한 작가의 머릿속은 흥미진진한 상상들로 넘쳐나고 또 번뜩이는 위트를 발휘해 엄청난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내 손 안에 들어온 『구미베어 살인사건』은 책으로 흥미진진한 여행을 떠나기에 이상적이었다.
이야기가 너무 길고 복잡하면 나는 가끔 이런 몹쓸 생각을 한다. ‘이렇게 힘들여가며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만 할까? 어차피 결과를 알게 되면 허탈해질 것이 분명한데 말이지.’ 그래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너무 길게 늘어지면 나는 읽던 책을 거꾸로 돌려 뒷장을 읽어버린다. 그렇게 대충의 결과를 이해하고 난 뒤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앞으로 와 독서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짧지만 굵은 소재의 단편들이 모인 책이기에 그랬고, 하나의 이야기 끝에는 항상 작가의 후기가 따라와 세계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소재나 큰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지만, 문체가 우선 간결하고 쉬워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빠르게 낚아챌 수 있었다. 이야기들은 신화 속 동화 같은 이야기 혹은 살인사건 등 시대와 스타일을 뛰어넘는 넓은 범위였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구미베어 살인사건」은 매우 현실에 입각한 스타일로 이야기를 이끈다. 한 소년이 살인사건을 목격한다. 이어지는 또 다른 살인사건, 그리고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알록달록한 색의 구미베어들. 소년이 범인을 찾기 위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매우 일상적이다. 그러나 이후 벌어지는 절정의 순간과 결말이 주는 커다란 반전까지 읽고 나면 이 싱거워 보이는 소설이 매우 재미있다고 느껴질 것이다. 반면에 「나암 왕국 이야기」는 왕국을 지키는 공주와 왕자, 마녀, 용이 등장하는 유럽 어딘가의 동화를 상기시킨다. 현실성 없는 시작이지만 이후 벌어지는 과학에 기초한 사건들, 그리고 다시 허구의 상상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매우 흥미진진하다. 즉 추리와 판타지, 동화,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무한한 미스터리가 얽힌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결말들은 또 어쩌면 그리도 깔끔한지. 내게 쉽게 읽히지 않는 SF를 빠른 시간 안에 꿀꺽 삼키게 하고 그동안은 느끼지 못했던 SF의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했다. 장르물이니 뭐니 하는 분류는 책이 어떤 소재를 담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미리 알려주기 위한 정보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장르가 됐든 ‘장르물’이라는 편협한 단어로 작품을 묶어 두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무엇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매우 간결하게 쏟아 놓는다. 탈 장르란 이런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장르가 개척되고 있는 시점을 내가 목격하는 것일까?
어쨌든 이 책은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의 뇌를 말랑말랑하게 마사지해주는 듯하다. 젊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은 멋진 작가를 발견한 것 같아 매우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