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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8
천적과 친구 사이
Editor. 박소정
고양이처럼 귀가 밝고, 야행성이며, 창밖 구경을 좋아한다.
고양이처럼 만사태평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늘 아름답기를 소망한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천적’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랐던 때 고양이와 쥐가 천적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유명한 <톰과 제리> 덕분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회색 털 고양이 ‘톰’과 치즈 한 조각만 한 크기에 짙은 갈색의 쥐 ‘제리’는 몸 크기로 보나 고양이와 쥐라는 관계로 보나 서로 싸움이 되지 않는 상대였다. 하지만 이 둘은 세기의 앙숙 관계로 매번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갔다. (사실 엄밀히 말해 싸움이라기보다는 영리한 제리가 우둔한 톰을 골탕 먹이는 이야기이다.) 항상 이 패턴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나중에는 지쳐서였을까 아님 순수한 동심에서였을까, ‘그냥 둘이 안 싸우고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만화영화를 챙겨봤던 것이 기억난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흘러 새로운 고양이와 쥐 이야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적 관계가 아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등장하며 종족의 벽을 넘는 아름다운(?) 우정을 보여준다. 쥐들이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어느 날 밤 ‘낸시’라는 이름의 아기 고양이가 담요에 싸인 채 한 집 앞에 버려진다. 이를 발견한 집주인 더거 씨는 아들 지미와 오랜 고민 끝에 낸시를 집에 들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을 접한 동네 쥐 어른들이 비상회의를 소집한다. 아무리 아기라지만 엄연히 다른 종족으로 훗날 마을에 위협적인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낸시를 직접 본 순간 수증기처럼 증발한다. 낸시의 새하얗고 북실한 털 그리고 특유의 귀여움에 녹아버린 것이다. 그리고 모두 한마음이 되어 낸시 돌보기와 지키기에 나선다. 매번 같은 리본만 매는 낸시를 안쓰럽게 여겨 리본을 왕창 선물하는 이가 있는 한편 교복을 입고 처음 등교하는 모습 을 놓칠 수 없다며 아침 일찍부터 더거 씨네 집에 찾아오는 이도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남다른 몸집과 보드라운 꼬리를 자랑하는 낸시를 ‘북쪽에서 온 쥐’ 정도로 여기며 끈끈한 우정을 쌓아나간다.
아니 도대체가!! 밖에 애들이랑 노는 저 커다란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낸시요.
아니 이름 말고요!! —더거씨네 딸…? 우리 아들 친구. 귀여워.
고양이!!! 고양이라고요 여러분…! 우리들의 천적!!
평화로운 나날이 흐르던 어느 날 배낭여행을 떠났던 헥터 삼촌이 돌아오며 분위기는 반전을 맞이한다. 그간 마을의 전후 상황을 알 턱 없는 헥터 삼촌이 ‘고양이는 천적’이라는 단순 논리로 무장하여 낸시 쫓아내기 작전에 나서려 한다. 그때 동네 사람들은 너도나도 나서서 이야기한다. 고양이가 아니라 사랑스러운 나의 막내딸, 소중한 내 동생, 특별한 내 친구 낸시라고 말이다.
고양이인 낸시만 보느라 다른 낸시들은 못 봤어요.
아기 고양이와 쥐 친구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지만 넓게 바라보면 결국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즉 겉보기에 다르다는 이유로 천적을 만들 것인지, 친구를 만들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새삼 톰과 제리도 겉으론 천적 관계를 표방할지 모르나 사실은 너무나 가까워 싸움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막역한(?) 사이일지도 모르겠다. 몇십 년간 죽일 듯 싸우지만 결코 죽이지는 않고, 때때로 제리가 죽은 척하면 톰이 화들짝 놀라 구급상자를 들고 달려오기도 하니 말이다. 역시 세상에 고양이만 한 존재가 없지,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