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th Books: 책과 함께 사는 삶
책 안에 숨겨진 가구,
Bookniture
에디터: 김선주
사진제공: 북니처 © Bookniture
피터 빅셀의 소설 『책상은 책상이다』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똑같은 그의 방이 문득 마음에 들지 않아 사물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다. 책상은 양탄자로, 침대는 사진으로. 결국 그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처럼 하나의 물건은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의자는 의자로, 탁자는 탁자로, 책은 책으로. 그렇게 평생 한 가지 목적에 충실한 채로 살다가 정해진 쓰임을 다하지 못하면 버려진다. 그런데 의자였다가 탁자였다가 책이 되기도 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홍콩 출신의 디자이너 마이크 막은 친구들을 자신의 공간에 초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항상 좌석이 충분하지 않아 손님을 바닥에 앉혀야 했다. 그렇다고 평소엔 쓰지 않을 의자들이 공간을 계속 차지하도록 둘 수도 없던 노릇이라 그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좌석을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접이식 간이 가구 ‘북니처Bookniture’다. 책book과 가구furniture를 합친 말이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가구를 간편하게 수납할 방법을 고민하다 아코디언처럼 펼치고 접을 수 있는 구조로 디자인했다. 크래프트지 소재와 전통 책 제본 기술을 더해 완전히 접으면 책의 형태로 보이지만, 360도로 펼치면 마치 팝업북처럼 동그란 스툴이 된다. 앞표지와 뒤표지에 자석이 있어 두 표지를 맞대면 안정적으로 원형이 유지된다. 이렇게 만든 원형의 오브젝트는 무게중심을 바깥으로 내보내 100kg가 훨씬 넘는 하중도 견딜 수 있다. 접어서 밴드로 고정하면 책장에 꽂아 보관할 수 있고,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간편하다. 들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펼치기만 하면 의자가 되었다가 협탁이 되었다가 받침대가 된다. 앉을 자리가 마땅하지 않을 때 ‘에라 모르겠다, 책이라도 깔고 앉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재미난 상상도 절로 든다.
북니처는 가구이자 책으로서 책의 물성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책 속에 담긴 내용이 해결에 실마리를 주기도 하지만, 물성 그 자체로도 책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책은 하나의 이름과 쓰임 안에 갇히지 않는다. 가구는 책 속에 숨겨진 작은 일부에 불과하고, 어떤 변신을 할지는 그것을 쓰는 사람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