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 2018
책의 의미
Editor. 박중현
중요한 것은 결과.
나아가게 하는 것은 과정.
올바르게 하는 것은 문득 떠올릴 만한 미소.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참 묘한 질문이다. 건네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구경하는 사람도 이에 대한 대답에 이미 어느 정도 정형화된 몇 유형이 있음을 안다. 대답 방식도 어떤 문장에서 단어를 바꾼다거나 조사의 쓰임을 달리한다거나 표현의 앞뒤를 변화하거나 자신만의 고유 표현을 첨언하는 등 익숙한 흐름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실은, 대답을 듣고도 아직은 뭐가 새롭다거나 알게 됐다는 느낌이 안 온다. 들은 이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거나 목소리 톤을 변화해가며 한 번 더 판단할 준비를 한다. 답한 이 역시 이걸로 충분했으리라 흡족한 경우는 드물다. 사실 여기서부터 본 게임이다. 그 정형화된 유형의 갈래는 이제 망망대해 급의 복잡미묘한 다양성의 바다로 풀려나온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이상형에 ‘재밌는 사람’을 답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당시 대중 의식이 외모지상주의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거나 수준이 낮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조금 생각해 보면, “재밌는 사람”이란 대답에는 묘한 뉘앙스가 미풍처럼 실려있다. 그 대답이 전부 ‘웃기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잘생긴 사람” “지적인 사람”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 “예의바르고 매너 좋은 사람” 등등이라고 해서 재미라곤 1도 없는 사람일 리 없다. 과거보다 현 사회에 웃음이 더 귀해졌음을 나타내는 듯도 하지만, 애초에 사람은 제각기 재미와 가치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 약속시간에 많이 늦어 서둘러 달려간 장소에서 발견한, 평소 무뚝뚝한 연인의 초조해하는 모습이 여느 개그 프로그램보다 재미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어릴 적만 하더라도 책에 ‘재미’를 당연히 찾는 이는 드물었다. 요즘은 오히려 “재미없는 거 왜 봐”라는 반응이 일상이 됐다. 대체 그 ‘재미’란 건 뭘까.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도록, 수목 미니시리즈 같은 극강의 효율적 콘텐츠 서사를 제공하는 일일까. 앞서 꺼냈던 ‘이상형’ 질문을 책 버전으로 바꿔 본다. “주로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안 읽는데요”는 슬프니까 빼기로 하자.) 역시 대답은 다양할 것이다. 편의상 도서 카테고리로 예를 들자면, 문학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경제·경영 서적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실용서를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잡지나 이론서적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 모든 책이 과연 재미있는 책일까? 글쎄, 하지만 모 시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꽃’ 일 것이다. 물론 작가와 출판사와 편집자, 책은 기획과 시대의 요구에 맞는 양질의 내용을 담아 가능한 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읽힐 힘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좋은 책이 탄생하지 못한다. 좋은 책은 독자의 호명을 받아 완성된다. 결국 재미란 누군가에게 ‘꽃’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인연 역시 망망대해 급의 다양성을 자랑하는 얘기겠지만.
그래서 책 얘기는 언제 하냐고? 사실 이제까지 책 얘기를 하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은 재미없는 책이다. 잠깐, 오해하지 마시라. 위에서 언급해온 ‘휙휙 넘어가는’ 그런 재미는 없다는 얘기다. 사실 에디터 하나가 재미 운운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이미 10년째 시리즈 발간 중인 스테디셀러로, 게다가 이번 책은 키워드 발표 12년째도 함께 기념한 특별판이다. 최근 10여 년의 주요 흐름, 그러니까 메가트렌드를 ‘MEGA TREND’라는 두운에 맞춰 9가지로 설명했으며 2017년도 함께 되짚는다. 그리고 매년 그해의 띠 동물을 포함하는 문구로 부제를 정해왔듯, 2018년 개의 해를 맞아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라는 숙어적 의미가 담긴 ‘WAG THE DOGS(원래는 Wag the dog이지만 현재 이러한 현상이 한둘이 아님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의 두음에 맞춰 트렌드를 꼼꼼히 예측했다. 앞서 지적했듯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는다. 이유는 다양하다. 한장 한장이 삶을 반추하게 하기도 하고, 생각을 확장하게 하기도 한다. 또한 비슷한 종류 외서의 경우 이론이나 현상을 서술함에도 흥미로운 사례나 저자의 위트를 빌어 쉽게 전달하고자 애쓰는데, 이 책은 책 전체를 8명의 공동저자와 트렌드헌터그룹 ‘트렌더스 날 2018’이 함께 참여했고 그 논거를 신문기사, 책, 도표 및 통계 등으로 확증하며 탄탄히 했기 때문에 담긴 내용의 무게가 고루 묵직하다. 어떤 것이 나은가의 문제는 아니고 성향 차이와 편집(저술)방향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 흥미로웠달까. 매년 ‘신년운세’를 점쳐보듯 챙겨 읽는다는 재미있는 구매평을 접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예언서와 같은 느낌을 기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 번에 쓱 읽고 치워버리기보다는,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충분히 읽어내려간다면 이 한 권으로도 현 대한민국의 소비 트렌드와 정서를 통찰하기 충분하리라는 믿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