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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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6
‘착한 남자들’ 잘못이 아니다
Editor. 김지영
욕심이 많아 포기를 잘 못 하고,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오기가 발동해 끙끙 앓는다.
고지에 이르러서야 지루해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잦다.
단, 사람에 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
남자친구와 싸웠다며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글쎄, 요즘 오빠를 보기가 힘들어. 일이 엄청 바쁘다나 뭐라나.” 투덜거리는 친구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줬다. 사실 친구는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 틈도 주지 않았다. 내가 여보세요, 전화를 받고 친구가 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까지,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던 건 오로지 ‘아’ ‘음’ ‘그렇구나’ ‘너무한다’였다. 친구가 울음을 터트리고 나서야 입을 열 기회가 생겼다.
“여성학, 아동학은 있어도 남성학이 없는 게 왜겠어. 아동학이랑 남성학이랑 다를 게 없다잖아. 너무 하나만 보니까 그러는 걸 거야.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비슷한 이야기들로 친구의 기분을 풀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어쩌자고 여성학은 있고 남성학이 없다는 식의 말을 내뱉은 건지. 편지가 아니라 통화였길 망정, 말이 허공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꾸준히
『맨박스』의 저자 토니 퍼터는 이 책의 서두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고 그저 꾸준히 배움을 이어가는 평범한 남성 중 하나입니다.”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에 대해 말하며 남성에게 일침을 가하는 책들은 너무도 많지만,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입장을 남성에게 말하는 책은 극히 드물다. 이 책은 후자에 속하는 극히 드문 책 중 한 권이다.
그렇다고 남성에게 ‘여성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의 성향은 남성과 달리 예민합니다’ 따위의 학문적으로만 배우고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정의처럼 말하는, 섣부른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지극히 남성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어온 사회적 학습 과정에 대해 풀어낸다. 생물학적 차이를 가진 ‘여성’이라는 개체를 기준으로 두고 그간에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강요해온 역할 분담에 관한 이야기를 말이다.
지금도 남성들은 남자다움을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배운다. 예컨대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은 몇몇 여성을 제외하고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거나 여자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다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쉽게 말해 ‘한 남자가 많은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행동을 ‘잘못된 행동’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악하고 매정해서 이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다. 단지 아주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 혹은 학교에서 남자다움의 기준을 만들어 눈치챌 수 없을 만큼 조금씩 그리고 매우 꾸준히 인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렇게 꾸준히 인식을 바꾸고 물들이는 맨박스(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의 규범)를 설명하는 본문에 이런 예가 있었다. 어느 날 저자의 아들이 집에서 여섯 명의 여자 친구들과 놀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상황에 대해 수천 명의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얻은 답변은 다음과 같다. “우리 아들 능력 있네.” “녀석, 장하다.” 그들은 아들이 여자아이들 여섯 명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다는 마음이 들 것 같다고 시인했다. 아들이 여자아이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증거이자 여자아이들 또한 아들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게이가 아님에도 그 여자아이들 중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다면? 이 질문에 남성들은 말문이 막혔다. ‘성적인 호감이 아니고서는 여자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강하게 박힌 의식이 남성들의 입을 막은 거다. 이미 오랜 시간 당연히 여기며 지냈던 일들이 그릇됨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오면 남성들은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착한 남자’ 들에게 저자는 맨박스가 진정한 남자다움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저 친구와의 통화에서 내 입으로 뱉은 남성학 발언 때문이었다. 누군가 미간을 찌푸리고 잔뜩 무서운 얼굴로 반기를 든 채 쫓아온다면 핑계를 댈만한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이 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의도와는 달리 막상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었을 때 내 발언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이 더욱 몰아쳤다. 남자다움에 갇힌 ‘착한 남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는, 섣부른 말이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여성 학대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 말하는 남성들,이런 ‘착한 남자들’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물들어버린 그들과 여성들이 공존하는 방안과 서서히 물든 그들의 인식을 원상태로 돌려놓는 게 더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