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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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8

짜증을 내도 후련하지 않아요

Editor. 이희조

‘그때 그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느낄 때 있으시죠?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미리 읽어두면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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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하지현 지음
문학동네

‘짜증’. 보기만 해도 벌써 어디선가 짜증이 몰려오는 것 같다. 생김새 하나하나와 입으로 내뱉었을 때 소리까지, 어딘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 같이 불쾌한 짜증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단어다. 그만큼 이 단어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짜증의 이데아와 이미 떼려야 뗄 수 없이 한 몸이 되어버렸다.
비슷한 감정인 ‘화’와 달리 짜증은 ‘내다’ 외에 ‘부리다’라고도 표현한다. ‘멋을 부리거나’ ‘억지를 부리듯이’ 일부러 그 기운을 계속 드러내거나 보인다는 뜻이다. 그래서 짜증은 보통 ‘불필요한 여분의 감정’ ‘대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잘못됨’과 같이 비꼬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쉽게 짜증 내지 말기’ ‘짜증 난다는 말 사용하지 않기’ 등 우리가 짜증을 자제하려는 데는 그런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짜증이 속 깊숙이부터 솟구쳐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별 것 아닌 지적에 ‘나도 알거든’ 하며 신경질을 내거나 만사가 마음에 안 들어 털끝만 건드려도 모난 말만 나올 때가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서 가만히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 풀어본 적 있는 부모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이런 경우 더 큰 문제는 짜증을 내고 난 다음에 ‘아, 속 후련하다’라는 기분이라도 느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주변 사람에게 미안해져 후회한다. 감정에 휩싸여 제멋대로 행동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내 인격 수양이 아직 이 정도구나’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자책한다. 인격 수양을 하러 명상이나 요가, 종교 활동에 매진하지만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진상손님마냥 나는 어느새 짜증을 ‘부리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면 두 걸음 물러서는, 끝나지 않는 수양의 길에 허덕이는 나를 구해준 건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 속 “그릇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한마디였다. 저자인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은 사람의 그릇이란 타고난 모양 그대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게 다 제가 그릇이 작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그릇을 크게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한정된 그릇의 크기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릇이 작다는 말이 아니다. 웬만큼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는 이들이라면 다들 이미 충분한 크기의 그릇을 가졌으니, 중요한 것은 그릇 크기가 아니라 그 쓰임새를 잘 찾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짜증 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자책하기보다는 내 마음의 컵이 한계까지 차올라서 넘치기 직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잠시 멈추어야 한다. 요가와 명상, 종교 활동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도와줄 수는 있어도 우리의 그릇을 성인처럼 크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짜증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면 ‘어디서 괜한 짜증이야’라며 잉여물 취급하며고 문전박대하기 십상이었지 차분히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면 짜증은 우리에게 계속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외면하지 말고 내 감정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진짜 나와 친해지는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계속 보니 ‘짜증’이란 단어도 좀 귀여워 보이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