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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상처가 아름답게 아물도록

에디터. 전지윤 자료제공. 안그라픽스

시간이 조금 걸려도 애정을 담아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 아름다운 그릇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킨츠기는 그릇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야쓰스やつす’라는 일본어가 있습니다. 사전에 첫 번째로 나오는 ‘초라하게 변장한다’라는 의미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화장하다’ ‘멋을 부리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합니다. 킨츠기를 통해 그릇을 멋스럽게 꾸민다는 마음으로 즐기셨으면 합니다.
킨츠기는 금(金)의 일본어 음독인 ‘킨’과 접합이나 이음을 뜻하는 ‘츠기’를 합친 말로, 천연소재인 옻을 사용해 이가 나가거나 깨진 도자기를 수선하고 금이나 은가루로 장식하여 마무리하는 일본 전통 도자기 수리 기법의 하나이다. 도편을 접합하고 복원하는 과정은 단순한 직소 퍼즐 맞추는 것에 비할 수 없이 세심하고 복잡하다. 손상되었던 흔적을 과하게 지우지 않되 최대한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원칙에 따른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면 그 복원 과정 자체가 갖는 높은 예술성에 놀라게 된다.
깨진 토기와 도자기들이 새 삶을 사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주로 박물관 전시실이다. 토기와 도자기는 점토를 반죽하여 성형한 것을 가마에서 구워 유약을 바르는 등의 후처리를 거쳐 완성되므로 금속 기물에 비해 화학적으로는 안전하지만 물리적 충격에 약하고 환경적 요인에 의한 손상에도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유물들 중 다수는 오랜 세월 토압을 받아 균열이 일거나 파손된 채 발굴되는 경우도 많고, 수많은 이들의 손을 타거나 세월의 풍파를 견디느라 손상된 채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은 역사적, 학술적, 심미적 가치를 갖는 문화재이기 때문에 복원과 보존이 꼭 필요하다.
킨츠기로 수선한 그릇도 일반 그릇처럼 사용해도 됩니다. 하지만 한 번 상처를 입은 그릇이라는 사실을 꼭 명심하세요. 소중히 다루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굳이 아끼고 아끼던 것이 아니라도 순간적인 부주의로 인해 늘 쓰던 그릇의 이가 빠지기라도 하면 못내 속상한 마음이 들기 마련일 것이다. 문화재 복원 회사를 거쳐 옻 공방에서 일하는 장인이자 만화가이기도 한 호리 미치히로는 직접 킨츠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수업을 운영해 왔다. 저서 『느긋하고 자유롭게 킨츠기 홈 클래스』는 미치히로의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집에서도 누구나 킨츠기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입문서다. 책 속 다양한 방법으로 수선된 유리그릇과 도자기는 꽤 오래된 것들이다. 테두리의 깨진 조각을 맞춰 고친 사발은에도 시대 중기에 수출용으로 제작된 아리타야키有田焼이고, 깨진 조각을 이어 붙인 뒤 금분으로 화장한 접시는 19세기 프랑스 크리스털 제조회사 바카라Baccarat의 제품이다. 주둥이가 부러진 찻주전자는 1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고, 손잡이가 부러져 난감했을 사기 숟가락은 청나라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혹시 값비싼 골동품이라서 시간과 공을 들여 고쳤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킨츠기의 본질은 “그릇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말한다.
금분과 은분으로 화장을 하거나 도금으로 마감하는 수리기법은 우리 역사에서도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세종실록에는 자기가 깨져서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해 금은 띠가 보인다는 기록이 있다. 시대에 따른 도자기 수리 복원 방법의 변천을 파악한 연구들에 의하면 고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도자기 수리를 위해 가죽이나 금속으로 된 끈으로 묶어 고정하거나 달걀흰자와 송진 등의 접착제, 석회, 백반과 같은 무기물을 복원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도자기 구연부와 같이 약한 부분은 보강하거나 수선하기 위해 주석이나 금, 은을 재단해 옻으로 접착해 부착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집에서도 킨츠기를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키트가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다. 다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구성품은 화학 접착제를 사용해서 불안한 감이 있고, 천연재료로 된 키트라 해도 필요한 재료의 용량이 터무니없이 적거나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재사용하기 어려운 것도 있으니 잘 따져 보아야 한다. 게다가 킨츠기의 기본 재료인 옻은 내산성, 방수성, 방부성이 좋은 훌륭한 천연 고분자 도료이기는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전통적인 핵심 재료인 천연 옻으로 칠을 하고, 유기용제를 사용하지 않아 무해하고, 재미있게 알기 쉽도록 간략화되고, 적절한 비용으로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어야 한다는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가르쳐주는 미치히로의 킨츠기 수업은 초보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책은 특수한 도구를 비싼 값으로 사지 않아도 대체할 수 있는 도구를 알려주기도 하고 미치히로가 작업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처럼 과정마다 자세한 사진을 실어 구성했다. 만화가를 겸하는 작가는 알쏭달쏭하거나 알아 두면 좋을 중요한 포인트를 직접 그린 다람쥐 ‘깨람이’와 ‘금찌’를 통해 콕 짚어 알려준다. 깨지고 흠집 난 도자기를 킨츠기로 살려내는 섬세한 과정 만큼이나 세심한 배려로 가득한 책이다.
모든 것이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요즘, 버려질 운명에 처했던 물건이 다시 생명을 갖게 되는 일은 내 손끝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더 이상 식탁에 올리거나 사용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조각난 아끼는 그릇을 어쩌지 못해 품고만 있었다면 이 책을 그 시작점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차분한 킨츠기 과정이 아끼는 그릇과의 새로운 만남을 느긋하게 이어 줄 것이다.
April23_Inside-Chaeg_01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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