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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7

죽음을 인식하는 유머러스한 새해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찰스 부코스키 지음
모멘토

새해 아침 우리는 새로운 한 해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한다. 그리고 새해에는 부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염원한다. 새해 아침 당신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당신은 분명 노년의 시간을 걷고 있는 자거나 우울증에 걸린 자가 분명하다. 젊은층, 중년층까지만 해도 새해 아침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나 매우 드물 것이다. 하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죽음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가였다. 『우체국』에 이어 본격적으로 부코스키 읽기에 돌입한 나는 ‘죽음’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는 작가의 일상이 어떨지 문득 궁금해졌고, 그래서 그의 수많은 책 중 이 책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손에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새해뿐만 아니라 언제나 죽음의 감정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오하지만 심오하지만은 않고, 부정적이지만 부정적이지만은 않으며, 우울하지만 코믹한 상황들이 전개되어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1991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해인 1993년까지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우체국』보다도 작가의 내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을 괴팍함과 고약함, 신경질, 그리고 가끔 찾아드는 안도감 따위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부코스키는 24세에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지만, 세상은 그의 소설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의 나이 거의 50세가 되어서야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층 노동자이자 우체국 직원 등으로 궁핍한 삶을 살았던 그는 작가의 성공을 그의 생애 끝자락에 가서야 잠시 누린 뒤 73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의 일기 중에는 언제나 경마에 대한 집착과 괴로움이 나타나며, 그의 글을 받아쓰던 매킨토시 컴퓨터 앞에 앉는 설레는 순간들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매우 자세히 드러난다. 현실에 늘 불만족했고 사람들을 싫어했으며 자신과 매우 솔직하게 대면한 작가의 삶을 서술하는 그의 독백도 끝없이 흐른다. 인생에서 그가 과거에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섹스, 폭력과 술, 도박, 세상의 부조리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그의 폭력적인 언행과 행동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이어진다. 일기의 중간중간 불현듯 나타나는 죽음이라는 존재와의 대면은 그가 죽음에 대해 얼마나 정신적으로 단단하게 무장을 해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의 일기 속 모든 웃지 못할 상황들 속에서 우리는 의외의 익살스러움과 해학을 발견한다. 어이없는 말투와 행동으로 주위의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했지만, 사실 이 세상 자체를 가장 당혹스러워 한 사람은 부코스키 자신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바닥을 바라본 사람들은 어떤 감정들을 느꼈을까? 그리고 왜 그의 작품은 좀 더 일찍 사랑받지 못했을까? 그의 일기에 그는 자기 글쓰기는 예전이나 현재나 그리 다를 바가 없었다며, 세상이 그를 뒤늦게 따라잡은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 그의 묘비에는 “Don’t Try”, 즉 “애쓰지 마라”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무언가 노력해도 절대 이룰 수 없는 것, 혹은 닿을 듯 닿지 않는 어떤 것에 온 마음과 정신을 빼앗기는 것 대신 죽음이 내 어디쯤 와 있는지를 고요하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부코스키처럼 말이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와 밝은 시기를 살다 간 그의 삶 곳곳에는 죽음이 언제나 빼꼼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바꿀 수 없다면 내키는 대로 살며 죽음을 준비하는 삶도 나쁘진 않겠다. 오히려 삶이 입고 있는 색이 더 진해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