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지침은 권력으로부터 용감해지고 남을 돌보고, 화합하며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 한다. 이는 광기에 휩싸인 사기 집단이 아니라면 어느 종교에나 해당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수많은 전쟁과 테러, 참사의 현장을 인류는 수세기에 걸쳐 목격해 왔다. 신념과 믿음. 그것은 왜 우리를 종교의 가르침과 반대의 여정으로 이끄는가? 과학의 발전으로 종교는 점점 그 설 자리를 좁혀가고 있는가? 무신론자는 왜 종교를 비판하는가? 현대의 종교는 어떻게 진화하며 또 현대인들은 종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 시대 종교에 관한 여러가지 단상을 찾아보았다.
I 종교들, 생태적 위기 상황에서 다시 열어본다 (글: 유기쁨(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종교를 묻는 까닭
종교. 누군가를 통해서든 우연히 미디어를 통해서든 그 단어는 한 번씩 들어보았다. 그렇지만 나와는 별 상관없는 것들이라 여기고 기억의 한구석에 쑤셔 박아 둔다. 이른바 ‘종교’라는 이름표 아래 뭉뚱그려진 잡동사니 서랍. 굳이 열어보지 않는다. 뭐가 들어 있는지도 잘 모른다. 특정 종교의 신자인 경우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그 ‘종교’만 꺼내어 귀하게 모시지만, 다른 ‘것’들은 서랍 속에 처박아 두고 관심도 두지 않는다. 또한 세련된 현대인들은 종교를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로 여기고,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는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종교’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지는 것들 주위로는 보이지 않는 벽이 둘러쳐져 있는 듯하다.
종교인들은 자기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그 안만 바라보고 있고, 비종교인들은 ‘벽’ 너머의 종교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낡은 서랍 속의 종교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먼지를 불어내고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보자고 제안한다. 이러한 작업이 오늘날 특히 필요한 까닭은,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은 성장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 등의 논리가 곳곳에서 너무나 강력하게, 또한 미세하게 작용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갖가지 문제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전망을 암울하게 만드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생태 문제다. 현대사회가 야기한 생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성찰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종교들이 전해주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설명에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낡은 서랍 속에 방치된 종교들을 끄집어 내어 ‘생태주의적’ 돋보기를 통해 가만히 들여다보면, 종교들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