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정세랑 속 안은영, 소설가 정세랑
에디터: 유대란, 사진 제공: 김종우
퇴마사가 이토록 귀여워도 되는 걸까. 친구들에게 ‘아는 형’이라 놀림받는 안은영, 툴툴대며 사람들의 ‘에로에로 에너지’를 지켜보는 안은영, 비비탄 총과 플라스틱 무지개 칼로 귀신들로부터 성가신 고딩들을 지켜주는 안은영은 평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심령술사다.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 속 그녀다. 소설을 읽고 이런 따뜻하고 귀여운 사람이 현실에 남아 있을까 궁금했다. 웬걸. 금방 찾았다. 만났다. 소설가 정세랑과 그 안의 안은영을.
원래 광고 쪽으로 갈 생각이었다가 어쩌다 출판사로 왔는데, 새로운 작품들을 실시간으로 읽다 보니 저도 쓰고 싶어졌어요. 문창과 출신도 아니고 좀 늦게 시작한 편이지만,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현재 예정된 책이 많이 있어서 빚쟁이가 된 기분이에요. 계약금을 받고 착수를 하는데, 상품이 있는 상태에서 계약하는 게 아니라서 무서워요. 특히 여행 갈 때. 갑자기 죽으면 계약금만 진탕 먹고 사라지는 거니까. 약속한 거 쓰고 죽어야지 그러고 있어요.(웃음)
‘리디북스 SF길라잡이’였던 것 같은데, 어느 기획자분이 정세랑이 가장 가볍고 쉬우니까 여기서 시작해서 넘어가라고 순서를 정해주신 게 있었어요. 제 소설이 입문자 용이라고 해서 기분 나쁠 수도 있는 건데, 별로 기분이 안 나쁜 거예요. 전 좀 가벼운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쉬운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작가는 쓸 수 있는 걸 쓰는 거고, 제 거에서 시작해서 좀 더 정교하고, 어려운 글로 넘어갈 수 있다면, 그 입구에서 깔때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왜 문학이 종교인 작가들이 있잖아요. 문학은 숭고한 일이고 절체절명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저는 그런 편이 아니거든요. 저는 문학을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고, 힘을 주고 쓰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평을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주변에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일정이 안 날 때도 친구들을 만나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작가가 방에서만 글을 쓴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동시대의 생활언어가 중요한 것 같은데, 친구들이 회사 상사 욕하는 것도 듣고, 업계의 흥망성쇠도 듣고, 취미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듣다 보니 그들의 말이 가장 문학적이더라고요. 친구들이 문학과 상관없는 분야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의 언어를 모으니까 더 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독자는 제 세대나 조금 밑의 세대겠죠. 요즘은 이런 동 세대끼리의 연결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작가가 동 세대와 같이 크는 게 아니라, 많은 나이의 작가와 같이 간다거나 하는. 저는 제 세대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제 세대의 독자들이 더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그런 걸 계산하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거무릇하다’, ‘웅숭깊다’. 저는 이런 말을 잘 안 써요. 정말 아무도 쓰지 않는데 지면에만 존재하는 그런 단어들을 골라내는 편이에요. 평소에 안 쓰는 언어를 작품에 쓰면 어색해지는 지점이 있어요. 생활언어라는 건, 만약에 누군가 몇 년 뒤에 제 글을 읽는다면 ‘2010년대에, 이삼십대가 쓰던 언어는 이랬구나’라는 반응이 나올 만한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포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떤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이제 안 입는 브랜드들을 입고 그러잖아요. 그런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1Q84』에서 주인공 아오마메가 입고 나오는 초록색 투피스에 대한 묘사가 멋졌던 것 같아요. 1980년대 유행하던, 피에르 가르뎅이던가. 그걸로 이 사람이 누구다가 이미지적으로 나오는. 그런 걸 통해서 이미지나 공기가 확 살아요. 전 그런 감각적인 걸 좋아하고 포착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