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6
전시용 혹은 관상용
Editor. 유대란
호기롭게 주문했던 『21세기 자본』이 도착한 지 24시간이 채 안 된 어느 오후, 평소 유식한 척하길 좋아하는 친구가 집을 급습했다. 그는 매우 고맙게도 책상 위에 놓인 800쪽이 넘는 이 책을 발견했고, 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책 뒤표지에는 “마르크스보다 크다Bigger than Marx”라는 문구가 빨간색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 얄미운 친구가 이 대문짝만한 문구에 주목하며 눈을 반짝였을 때 나의 에고는 대담한 서체 크기만큼이나 부풀었다. 마실 걸 가지러 가기 위해 등을 돌렸을 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선배가 들르러 왔다가 『촘스키, 사상의 향연』이 책장에 꽂힌 것을 보고 나에게 ‘촘스키 읽는 여자’라는 가증스럽지만 그럴싸한 애칭을 붙여줬다. 나는 또 한 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털어놓자면 『촘스키, 사상의 향연』은 다 읽었지만, 『21세기 자본』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포기했다. 결국 이 책은 혼자 있을 때는 관상용, 누군가 들이닥쳤을 땐 보여주기 좋은 전시용 오브제가 되었다. 나는 왜 이토록 책을 ‘매춘화’하는 걸까?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30년 전쯤 문화와 취향이 신분을 대변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직감했다. 21세기, 우리는 모두 ‘시민’이라는 신분을 달고 살지만 구별 짓기는 여전히, 더 교묘하게 진행 중이다. ‘지성을 위한 필독서’ 같은 목록 속 책들은 지성의 성대한 상징물로서 단순한 소지의 여부가 때로 우리의 자부심을 가른다. 지식이 실천으로 이어짐은 고사하고 완독조차 하지 못한 책들이 여럿 꽂혀 있는 나의 책장은 지식의 무덤인 동시에 ‘지적인’ 인테리어다. 진정한 애서가들은 노여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알까? 살짝 맞아도 비명횡사할 만큼 두꺼운 이 책들은 활용방안이 무궁하다는 것을. 인테리어 소품, 호감지수 증감의 한 수이자 유사시에는 무기, 팔운동할 땐 아령, 찬장 높은 칸에 모셔둔 유리잔을 꺼내고 싶을 때 발 받침도 될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