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September, 2016

저항과 향유의 틈바구니에서

Editor. 유대란

몸에 나쁘고 후회가 예정된 일들에 투신한다.
소독차를 보면 쫓아가고 비 오는 날 나는 기름 냄새를 좋아한다.
위스키에 나물 안주를 먹을 때 행복하다.

『혼자 살아가기』 송제숙 지음
동녘

혼자 사는 데는 비용도 품도 많이 든다. 일단 주거비가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공과금, 식비를 제외하면 남는 게 많지 않다. 한국에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지만, 개발 시대부터 집값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 대도시에 혼자 살기로 한 것은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니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구를 조립하고, 옮기고, 가전제품을 고치는 일은 즐거운 일이 되었다. 혼자 사는 즐거움이 크니까 그 정도 비용과 수고는 아깝지 않다. 그런데 ‘여자’로서 혼자 사는 데는 또 다른 비용이 있다. 감정적 비용이다.
혼자 살기로 했을 때 부모님의 걱정은 신체적 안전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혼자 사는 여자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단다.” 이 문장에서 ‘여자’에 방점이 찍혔다. 거슬렸지만 “그러든 말든!”이라고 짧게 응수하는 것으로 대화도, 우려도 일단락했다. 그런데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면서, 언제부턴가 거기에 쏟아야 하는 감정적 비용이 부정할 수 없는 수위란 걸 체감했다. 의식조차 안 하고 있던 사안을 놓고 투쟁해야 할 일들이 빈번했다. 내가 ‘혼자 산다’는 정보를 취득한 사람들은, 그것을 공공연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생활에 규율이 없고 성적으로 자유분방할 거란 인상을 가졌다. 사실이든 아니든, 주거 단위에 생활상을 귀결시키거나, 아니면 부모님이 우려하던 걸 진심 어린 마음에서 걱정해주는 또래나 약간 윗세대의 반응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약간 윗세대라는 게, 1990년대 중반 학번인 선배들이라는 게 더더욱. 내가 대학을 입학한 뉴밀레니엄 이후 학생 운동은 동력을 완전히 잃었지만, 군대, 어학연수 등을 다녀와서 학교에 복귀한 1990년대 중반대 학번들의 선배는 여전히 투사적 기질을 간직했다. 비록 말뿐이라 해도 자유, 평등, 민주가 그들의 중요한 화두였다. 어깨너머 ‘NL’이니 ‘PD’니 떠들던 그들에게 ‘혼자 사는 여자’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여성 평등의 문제는 그들에게 뒷순위였다.
하지만 학습의 동물이라서일까, 취업을 한 후 얼마 있다가 나 역시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실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세간에서 부당하게 부과하는 성적 호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가 주입하는 화려함 대 초라함의 문제였다. 당시 매체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미혼 여성은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살았다. 드라마 속 싱글 여성의 삶에는 주거, 계급, 성차별의 어려움이 등장하지 않았다. 혼자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 향유하는 방식만 나올 뿐이었다. 나 역시 또래의 많은 여자애들처럼 ‘향유’하기 위해, 더 정확히는 ‘향유하는 싱글라이프의 이미지’ 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해외 여행, 호텔 수영장, 파티, 쇼핑, 고급 커피 따위가 가져다주는 건 허무함이었다. 혼자 산다는 건 애초 정당화해야 할 사안도, 치장해야 할 의무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노력은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삶의 태도로 수렴되었다. 자본이 모든 걸 제공하고 해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 고로 혼자 사는 여성은 무시와 차별을 받지만 돈이 있으면 그런 지위에서 벗어나 당당한(다른 말로 소비에 환장한) ‘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은 여성 문제를 자본의 문제로 슬그머니 흡수한다. 문제는 나는 여태까지도 그런 피상적 ‘향유’와 ‘자괴’의 언저리에서 오가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
혹시 이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라면 『혼자 살아가기』는 마치 대형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듯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앗, 이거 내 얘긴데’로 시작해서, 점차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더 넓은 반경을 비춰주는 거울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인류학자인 송제숙 교수가 여러 인물의 서사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기록하고 여성의 주거, 비혼,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문제를 분석한 학술 보고서 같은 책이다. 저자는 여성을 둘러싼 언어의 불협화음을 신문화사적 입장에서 설명하고 정치적 성향과 사회적 성향의 불일치를 이 시대 여성 공통의 문제로 규명한다. 나/우리 문제에 한층 근접한 후에는 이런 의문이 생긴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경제·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자들인 우리는 대체 어디 서 있는 거며, 어디로 향하게 될까? 저자는 결론에서 이런 상태를 ‘유예’라고 표현하며, 새로운 정치적 정동과 기풍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설명한다. 거기에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망설여진다. 지나친 자기 긍정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손가락만 까딱하면’이라는 마트 광고를 보며 저임금 배송 노동에 동원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불편해할 정도의 양심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인 자신을 봤을 때, ‘패뷸러스 싱글 라이프’ 류의 카피를 역겨워하면서도 은근슬쩍 동경하는 분열된 자신과 마주하는 날들에는 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