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자신에게 가장 모진 창작자, 작가 윤태호

에디터: 유대란, 사진 제공: 김종우

대기업에선 공기처럼 주어졌던 것들이 희박해진 환경. 원 인터내셔널 영업3팀의 인물들이 중소기업이라는 환경에서 재회했다. 지난 11월 연재가 시작된 미생 시즌 2에서는 오 차장이 설립한 온길 인터내셔널에 합류한 장그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회계, 해외사업, 결혼이라는 3개의 큰 주제로 풀어나갈 시즌 2는 연재의 시작과 동시에 한층 더 혹독해진 현실성으로 전폭적인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생: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제10권, 포석의 출간을 맞아 윤태호 작가를 만나 미생과 창작에 관해 물었다. 만나본 바, 그는 내가 본 사람을 통틀어 가장 자신에게 엄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미생같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가 말하는 문장 역시 정체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훈련으로 얻어진 화법이기보다 생각하는 바를 진지하고 쉼 없이 탐구해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작가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Chaeg:매우 바쁘게 지내고 계실 텐데요,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미생을 화요일, 금요일 연재하고, 누룩미디어라고 만화가들이 만든 에이전시의 대표로 있어서 화요일은 거기로, 수요일, 금요일 오후는 현재 100권짜리 교양 만화를 준비하고 있는 바이브릿지로 출근하고 있고, 미생을 게임화시키려는 합작 회사를 만들어서 관련된 리포트를 검토하고 있어요. 수요일엔 에이코믹스라는 만화 웹진과 미팅하고 그러죠. 금요일마다 세종대 강의를 나갔는데 올해부터 그만뒀어요.

Chaeg: 시즌 2에서 중소기업을 다루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시즌 1에서 대기업을 다루면서 당연한 과정처럼 생각됐어요. 미생을 시작하면서 회사라는 데가 어떤 곳인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지 그리고 싶었는데 대기업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있으니까 대기업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대기업은 단일 회사 규모로 사람이 많은 거지 우리나라 전체 직장인 규모로 봤을 때는 절대 수치가 아닌 거더라고요. 이게 대표성을 띠면 안 되겠구나 싶었어요.

Chaeg:직장인의 80% 이상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고, 그만큼 또 수많은 중소기업이 존재해서 그중에서 대표성을 띠는 모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을 묘사할 때는 한두 분의 조력자로 시리즈를 끌고 왔어요. 그들의 이야기만 들어도 우리나라에 있는 대기업 종합상사 몇 군데는 윤곽이 통일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중소기업은 인터뷰하기가 겁날 정도로 다 제각각이에요. 그래서 중소기업을 개별적으로 인터뷰하기보다는 무역보험공사나 코트라 같이 다양한 중소기업을 만나는 기관에 계신 분들을 인터뷰했고 어느 경우까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무리가 없는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무역보험공사에 가서 보험 상담을 하러 오신 대표님들의 얘기를 그 옆에 앉아서 듣기도 했어요. 그리고 게시판 글들을 살피고 회계자문을 맡고 계신 분에게 많이 여쭤봤죠.
대기업은 매뉴얼이라는 게 있고 사회적인 감시를 받잖아요. 그래서 드러내서 이야기할 만한 거리가 많이 있어요. 과한 이기심 같은 부분에 대해서 편하게 비난할 수 있죠. 그런데 중소기업은 너무 막막해요. 케이스마다 다 달라요. 돈을 쓰는 방법, 돈이 들어오는 방식, 일하는 스타일, 회사의 구조. 10개의 중소기업이 있으면 10개가 다 다르죠. 그리고 분명히 회계나 세무적인 부분에서 법망을 피하는, 불법까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부분들이 편하게 취재가 될까, 실재하는 법과 이들이 취하고 있는 생존의 영역에서 하는 해석과 사연을 내가 편하게 그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미생 시즌 2에서는 회계를 다루겠다고 했는데, 아주 교과서적인 이야기만 다루게 될 거예요. 기교적인 이야기보다는 원칙적인 것들이 되겠죠. 회계를 인생에 접목해서 인생 재무제표 같은 걸 만들어보고 싶은 거죠. 그 둘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뜻이 아니라, 회계 안에는 자산이라는 게 있잖아요. 추상적인 개념도 자산에 들어가잖아요. 회사에 속해 있는 나의 창작력, 추진력 이런 것도 자산이 되는 것이니까. 몇 년 제 대학을 나왔고 석사, 박사라는 걸 생각했을 때, 나라는 사람은 엄중한 재무제표라는 표로 봤을 때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만들고 싶은. 이런 게 회계 1부에서 다루고 싶은 거고요.

Chaeg:큰 줄기를 만드는 것도 그렇지만 중소기업의 하루하루 생활상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당연히 어려워요. 왜냐하면 즐거울 일이 별로 없어요. 대기업은 자기한테 화살이 올 일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거든요. 워낙 많은 사람이 있고 파트별로 업무가 세분되어 있어서, 종일 자기가 회사에 가서 상대해야 할 사람이 몇 안 될 수도 있고, 어떤 부분에서는 회피할 수도 있고. 근데 중소기업에서는 숨을 데가 없는 거죠. 사장도 미팅을 할 때 직원들이 다 듣는 옆 테이블에서 회의해야 되는 거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부하직원이 보는 앞에서 자기 속을 보여야 하는 거고. 또 장그래 같은 부하직원은 대기업에서 왔잖아요. 대기업에서는 자기 책상에 항상 해야 할 일이 착착 있었는데 여기선 자기가 만들어서 해야 하거나 일의 공백이 자꾸 생기는 거죠. 왜냐하면 당장은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랬을 때 갖는 한가함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요. 자기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직 일이 파악이 안 되고 중소기업이다 보니 선배들이 가르쳐줄 시간은 없고. 대기업에서는 인트라넷으로 뭔가 계속 업데이트가 되잖아요. 그런데 중소기업에서는 그런 게 없고, 대표나 상사가 하는 말 중에서 그 사람이 괄호 안에 넣은, 입으로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 생각하고 짐작해서 자기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아직 훈련이 안 된 직원으로서 너무나 괴롭겠죠. 그런 지점들을 묘사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Chaeg:시즌 2에서는 경영, 회계, 해외사업 그리고 결혼을 다루실 예정이시라고요. 러브라인에 대한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드라마에는 러브라인이 들어가길 원치 않으셨죠.
시즌 1이 드라마화될 때 러브라인을 반대한다고 했던 건 원작에 없기 때문이었죠. 러브라인을 완전히 배제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가 그리지 않은 걸 넣는 게 좀 싫었던 거예요.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는 것 못지않게 결혼도 삶에서 당연히 중요한 화두잖아요. 이야기 속 인물들도 결혼을 준비할 테죠. 결혼을 안 한다고 해도, 중요한 선택지가 되는 것이고요. 연애를 하고 썸을 타고가 아니라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그런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싶은 거죠. 저는 감정이입이 되었던 부분이나 아이디어들이 시간이 지나고 다 휘발된 뒤에도 유효한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령 회사라는 곳에서 사업을 하거나 계약을 할 때 원소가 되는 지점을 그리고 싶지, 특별한 케이스를 그리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결혼이라는 것도 2016년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만 요구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는 왜 남과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문제예요. 거기에서 구체적인 여러 가지 질문들과 고민들이 파생하겠죠. 상대방이 집을 하면 난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월세를 살아야 할까, 전세를 살아야 할까,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은 언제나 유효했잖아요. 사랑을 한다는 건 대전제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헤어지기도 하잖아요. 그게 도시에서의 삶이고 비참함이라면 그걸 그리는 거죠. 사랑하고, 프러포즈하고, 결혼하기로 맹세했던 사람들이 매일같이 커피숍에 앉아서 얼굴에 그늘만 가득하고, 이 집이 괜찮을지, 대출을 얼마나 받아야 할지, 대출을 받으면 앞으로 몇 년을 갚아야 할지, 이런것들을 고민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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