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9
일할 수 없는 여자들
Editor. 최남연
불편하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나 일하는 시대다. 아니, 누군가의 덕을 보지 않고 나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누구나 일해야만 한다. 만인이 진입하는 노동 시장은 그러나, 아직 여성에게 너무나 불합리하다. 나 역시 여느 누구처럼 학부를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하며 정보나 후일담, 하다못해 카더라에 그치는 이야기라도 얻고자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공부하는 걸 좋아해 대학원 생각도 컸는데, “여자는 학위를 따고 나이를 먹으면 취직하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일단 일을 시작하고 공부를 이어가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보류하고 취직으로 눈을 돌리니 능력보다 외모로 평가받거나 “결혼 계획이 있냐” 같은 질문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이런 기업, 아직도 있답니다) 여성 구직자 앞에 놓인 현실이었다. 지난해 한 대기업의 면접 복장 규정은 남성의 경우 넥타이를 착용한 정장 차림, 여성은 그에 ‘준하는’ 차림이었다. 기업이 남성과 여성 구직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드러나는 사례다. 얼마 전에는 취직하기 전 함께 아르바이트 했던 동생이 새 일터에서 동료 남성보다 낮은 시급을 받아왔음을 알게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처한 이 같은 현실을 구체적인 자료와 통계에 적당한 이론, 외국의 사례를 곁들여 살피는 책이 있으니 최성은의 『일할 수 없는 여자들』이다. ‘북’과 ‘저널리즘’을 합해 책보다 빠르고 뉴스보다 깊이 있게 여러 주제를 다루는 ‘북저널리즘’ 시리즈 31번째 책으로 지난 12월에 나왔다.
책은 특히 고학력 여성에 주목해 여성이 구직 과정을 거쳐 업무를 수행하고, 이후 생애 주기에 따라 마주하게 되는 장벽과 어려움을 살핀다. 크게는 남성 지원자를 선호하고 남성에게 교육과 승진의 기회가 돌아가는 등 핵심 인력(고임금/고숙련/정규직)과 주변 인력(저임금/저숙련/비정규직)을 구분하는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1장 평등한 경쟁이라는 환상), 회식 문화, 성별 임금 격차, 유리천장, 직장 내 성희롱 등 여성을 배제하는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Homosocial-society(2장 여성에게 학력 프리미엄이 있을까), 학력으로 대표되는 능력을 갖춰도 여성의 발목을 잡는 임신, 출산, 양육과 모성애의 기대, 그 결과 마주하게 되는 가정주부화, 경력단절(3장 엄마 되기를 거부합니다) 등이다.
저자는 국회 입법조사처 아동보육입법조사관보를 거쳐 대전세종연구원에서 여성·아동 정책 담당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폭넓은 자료를 제시하며 상황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명쾌함이 있다. 책 곳곳에 담긴 저자의 경험담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도 과거에 “여자가 나이 들면 자리 잡기 쉽지 않아” 소리를 들었고, “시어머니 찬스를 사용할 수 없었다면 지금쯤 연구실 책상에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니. 사실 학력에 상관없이 모든 여성이 결국 비슷한 장벽 앞에 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활에 필요한 것을 돈을 주고 구입한다. 돈은 노동시장에 나가 노동하고 임금을 받아 마련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장애물에 부딪히고 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며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자립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다름없다. 여성 개인뿐만 아니라 유능한 인재를 잃게 되니 사회 전체에도 손해다.
책은 4장에서 해외 사례를 살피며 해결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성별에 상관없이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고, 사회 모든 영역에 여성이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의사 결정권을 보장받도록 하는 성 주류화gender-mainstreaming 정책도 구색 맞추기식이 아닌, 제도의 취지에 대한 이해를 발판 삼아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공공 보육 정책을 확대해 여성에게 집중되는 양육 및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야 함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정책은 그 필요성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공감대가 선행할 때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아직 “요즘은 안 그래” “그래도 세상이 좋아졌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일을 구하는 여성, 일하는 여성,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몇 마디 말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인 호소도 아니다. 단단한 사회 구조에 의해 여성들이 실제로 밀려나고 있다. 그 상황을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