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 History 책 속 이야기: 역사
이주자의 흔적, 고인돌
에디터: 지은경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 Sebastian Schutyser
여행자들에게는 한 가지 법칙이 존재한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다. 너무 많은 짐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옭아매고 결국엔 길 위에서 무언가를 버려야 할 일도 생긴다. 이동을 멈추지 않던 먼 과거의 우리 선조들에게도 이와 같은 법칙이 작용했다. 그들은 여행 중 없어서는 안 될 도구나 무기들 혹은 작게 포장이 가능한 장신구들만을 가지고 여행했다. 몇몇 유목민은 해체가 용이한 가벼운 유르트나 텐트를 가지고 다녔는데, 그게 바로 그들의 안식처였다. 그렇게 흔적을 지우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시간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는 거대한 흔적들을 남겼다.
수천 년 전에 무거운 돌 구조물로 세워진 고인돌은 선사시대 거석문화의 기념물이다. 고인돌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갖가지 다양한 생각을 하고 각기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이 거대한 돌덩이 앞에서 두 가지의 의문을 먼저 던진다. 누가 이것을 만들었으며 왜 만들었을까?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많은 가설이 제시되었다. 그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으로는 고인돌이 무덤이나 묘실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과거 인간이 사용하던 유물, 갖가지 인공물들이 고인돌의 내부 혹은 근처에서 발견되었고 그 유물의 연대측정을 통해 당시의 시간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고인돌 역사의 흔적과 가설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이주’라는 행위가 이 이야기에서 더욱 중요한 핵심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현재 발견된 지구상의 고인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서유럽의 것이다. 이것들은 5,000년에서 7,000년 전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은 아일랜드와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등에 퍼져 있으며, 이 분포도는 북아프리카와 중동, 코카서스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아시아로 넘어와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해안가, 중국 해안가와 일본의 남쪽까지 연결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가장 밀집된 분포도를 자랑하는 곳은 한반도다. 집계된 수만 해도 3만5,000여 개, 전 세계 고인돌의 40% 이상이 한국 땅 위에 존재한다. 게다가 한반도의 고인돌들은 형태나 크기 면에서 압도적인 조형성과 스케일을 뽐낸다. 또한 어떤 경사진 지형에 위치하건 고인돌 상판 덮개는 언제나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고인돌 문화가 있었던 지역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해안가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 농경문화가 발달했던 곳이라는 점, 심지어는 인도와 우리나라의 농사에서 쓰이는 단어 400여 개가 같은 뜻과 발음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인돌 루트를 통해 먼 과거 사람들끼리 문화적이고 생물학적인 혼혈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그들이 그저 진화가 덜 된 원시인이 아닌 활발한 교류 활동과 과학적 산출에 근거한 집성과 또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