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March, 2015
음악 좀 듣는다는 당신
Editor. 유대란
왜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주말 밤 LP바에 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신청 곡을 사이 좋게 써 냈는데 내 곡만 나오지 않아 낙담하는 경우. 맥주를 들이켜며 인내심을 발휘해도 영영 당신의 곡은 나오지 않을 것만 같고 조바심에 발동이 걸린다. 디제이에게도 그만의 취향이 있고 그날 밤 그곳에 도착하기 전 이미 나온 곡이라 선곡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던 불의의 사건일 수도 있건만당신의 마음에는 작은 균열이 가고 만다. 다시 애먼 볼펜을 틀어쥐고 새 선곡 종이 위에서 ‘틀어 줄 만한’ 가치가 있는 곡의 기준에 대해 번뇌한다. 그쯤 되면 선곡은 더 이상 기분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닌 자존심이 걸린 신경전이 된다. 음악에는 비단 취향만이 아니라 ‘레벨’과 계보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는 이런 당신, 음악 좀 듣는다고 자부하는 당신이라면 환영할 책들을 엮었다.
『PAINT IT ROCK, 남무성의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는 페이지를 여는 순간 음성 지원이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둥다라당당’ ‘좌우지기 장지기’의 록 사운드가 들리고 작가가 마치 라이브의 현장에서 신나고 숨가쁘게 해설을 들려주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록 음악에서현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작가는 잘 알고 있다. 작가는 록음악과 록 뮤지션,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기념비적인 사건에서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모두 컷 안의 현장으로 재현했다. 생생함을 더하는 것은 작가의 수다스럽고 재치 있는 입담이다. 그는 한 장면도, 한 에피소드도 그냥 넘기지 않고 컷 속 인물의 입을 빌려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밴드 벨벳언더그라운드에 니코가 새 멤버로 합류하게 된 장면에서는밴드 리더였던 루 리드의 머리맡에 말 풍선을 띄우고 “가뜩이나 칙칙한데”라고 코멘트를 달고, 이로 기타 줄을 치는 등 기상천외한 연주력을 보여줬던 지미 헨드릭스 편에서는그가 이로 무를 갈아보겠다고 하는 등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 만화지만 대사와 정보의 양이 유난히 방대하고 이야기는 록의 화려한 속주처럼 재빠르게 전개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주문 사항이 있다.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위해 시원하고 알싸한 음료를 준비할 것. 그것이 맥주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재즈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밝히기가 멋쩍을 때가 있었다. 주변에 재즈광들이 많아서였다. 그들은 시기별특성이나 하위 장르별 뮤지션들의 계보까지 읊을 정도의 재즈 마니아들이어서 명함도 내밀기 힘들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뒤질세라 재즈 서적들을 탐독하다가 『재즈 플래닛』을 만났다. 그리고 무언가를 좋아할 때 반드시 그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은 이 책을 통해서였다. 작가 강모림이 책에서 소개하는 음반과 뮤지션은 순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기준으로 선정한 것이다. 작가는 아주 간결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하게 음악별.뮤지션별 마음이 가는 지점을 밝히고 저변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아트 테이텀의 앨범은 유난히 피곤한 날 ‘섭취’하고 찰리 파커의 박력과 블루스적인 면모가 공존하는 연주를 들으며 강해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느꼈던 슬픔을 불현듯 발견하는 식이다. 작가가 그린 재즈 뮤지션들의 초상도 인상적이다. 루이 암스트롱의 한 대 얻어터진 듯 두껍고 투박한 입술, 마일즈 데이비스의 불거진 얼굴 골격과 서늘한 눈매 등 각 인물의 개성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 속 재즈’와 ‘쉽게 읽는 재즈 히스토리’ 챕터도 흥미와 지식 면에서 모두 훌륭하다. 재즈를 막 듣기 시작했다면 입문서로 추천한다. 재즈를 좀 아는 당신이라면 이 책은 ‘레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재즈를 들리는 그대로 즐겼던 초심으로 돌아갈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토토가’가 많은 이들을 잠시 추억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음악을 다소 진지하게 들었던 당신에게는 아쉬움을 남겼을 수도 있다. 90년대 당신의 청춘을 물들였던 음악은 거기서 쏙 빠졌으므로. 『청춘을 달리다』는 MBC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작가이자 음악평론가 배순탁이 90년대 음악이 있어 청춘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이들에게 바치는 청춘과 음악에 대한 찬가다. 당대가 낳은 신해철, 이승열, 크라잉넛, 이소라, 유희열, 015B와 같은 뮤지션 15인의 음악 한 소절 한 소절에 겹겹이 산적된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현장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그 청춘의 현장에서 우리는 사랑에 실패하고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부모와 반목하고 어느 것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마저도 애틋한 추억이 됐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음악을 조금은 ‘진지하게’ 들었던 이들에게 추억 이상의 가치를 선사한다는 데 있다. 배순탁은 청춘의 기억을 소환하지만 감성으로 점철된 추억놀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충실한 비평을 요구하는 이들의 갈증을 채워준다. 그의 글이 감각적인 감상록에 그쳤다면 과거를 실제보다 좀 예쁘장한형태로 박제화하는 데 그쳤겠지만 작가는 비평가다운 점조한 문장과 관찰력으로 왜 그 음악들이 그토록 청춘의 마음을 울렸는지 그리고 현재에도 우리에게 바투 다가오는지설명하며 과거와 현재의 가교가 돼 준다. 지은이는 평론가가 ‘객관을 가장한 주관을 설득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서 여전히 우리의 플레이 리스트의 한 뭉텅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관이나 우연의 소산만은아닐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