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of Tales 동화 꼬리잡기

유행에 흔들리나요?

글. 김보나
자료제공. 책빛

햄토리라는 캐릭터가 한참 사랑받던 시절,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햄스터 두마리를 키웠던 적이 있다. 작고 앙증맞은 녀석들이 처음엔 귀여웠지만, 생각지 못하게 점점 불어나는 햄스터 가족을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다. 만화 영화 속 귀여운 캐릭터들과 달리 손이 많이 갔고, 새끼들은 점점 늘어났으며, 날이 따뜻해지자 햄스터 우리에서는 고약한 냄새까지 났다. 잘 돌볼 수 있다는 약속을 하고 사 왔지만, 어느 새 햄스터들은 나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어갔 다. 왜 내 마음은 그렇게도 쉽게 변했던 걸까?
한물 간 동물들이 머무는 곳
“이제 유니콘의 시대는 갔습니다! 어린이들 사이에 새로운 동물이 유행합니다. 바로 털이 아주 부드러운 통토리우스입니다.”
‘보세주르 레지던스’는 인기 스타 자리에서 밀려난 동물들이 머무르는 숙소다. ‘피플지’의 표지를 장식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유니콘 푸퓌는, 어느 날 저녁 8시 뉴스에서 새로운 스타 통토리우스의 탄생 소식이 들리기가 무섭게 보세주르 레지던스로 가게 된다. 그곳에는 피카츄를 비롯해 우리 눈에도 친숙한 팬더, 공룡, 다람쥐 등 실제로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동물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수영장, 피트니스 클럽 등 완벽한 부대시설이 갖춰져 있고, 다양한 취미 활동까지 즐길 수 있는 이 꿈의 숙소에서 푸퓌는 지나간 영광을 되찾을 날을 기다리며 환상적인 휴식을 즐긴다.
그런데 ‘아름다운 숙소’라는 뜻을 가진 이곳에서, 갑자기 한 캐릭터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밝고 유쾌하게만 보이던 보세주르 레지던스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이를 지켜보는 독자 역시 어딘가 의뭉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에는 질 바슐레 작가가 심어놓은 회심의 장치가 있다. 책에는 공포 영화 〈샤이닝〉에 등장하는 카페트 문양, 곳곳에 배치된 감시카메라가 꾸준하게 보여지는데, 이는 보세주르 레지던스가 아름답고 좋기만 한 숙소가 아니라 동물들을 감시하는 조작된 공간임을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자크 루이 다비드의〈마라의 죽음〉 〈사비니 여인의 중재〉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비롯한 여러 명화들이 등장한다. 이 명화들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채 전 세계를 제패하고자 전쟁을 벌였던 나폴레옹의 모습이 세상의 욕망을 마음대로 좌우하려다 끝내 몰락하는 보세주르의 사장과 겹쳐보인다. 또한 책 속 캐릭터들이 지내는 방 안의 벽지에는 도넛, 아이스크림 등 현대인이 욕망하는 상징적 요소들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 스타였던 통토리우스들도 보세주르 레지던스로 들어오게 된다. 처음에 그들에게 경계심을 느꼈던 푸퓌는 통토리우스 중 하나인 도뒤와 친구가 된다. 함께 우정을 쌓아가던 둘은 곧 보세주르 레지던스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금지된 지하실 탐험을 시작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거울
한순간에 사라졌던 장난감들은 아이들의 취향과 유행에 따라 레지던스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다. 이 이야기가 비단 장난감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더 잔혹하다. 특히 요즘은 반려동물을 장난감처럼 쉽게 고르고 소비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몇몇 동물은 다양한 매체와 SNS를 통해 패션이나 소품처럼 유행을 타지만, 새로운 유행이 생기면 곧바로 관심이 사그라든다. 반려동물 유기에 관한 한 기사에서 인천광역시 수의사회 유기동물보호소의 관계자는 “유행했던 강아지들이 유기센터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한 종이 유행하면 2~3년 뒤에는 유기견으로 발견되곤 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한 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보호관리 시스템에 따르면 2010년 399건에 불과했던 포메라니안종 유기견 수가 10년 사이 두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포메라니안 종이 인기를 얻으며 유기동물 수도 덩달아 증가한 것이다. 보세주르 레지던스로 오게 된 푸퓌, 통토리우스의 상황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만약 그 대상이 진짜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었을까? 시선을 사로잡는 각종 화면 속 멋진 장면들은 말한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멋진 것을 선택하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고. 지금 선망하는 그 대상을 소유하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릴 거라고. 하지만 그 속삭임은 진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그 유혹들은 우리 각자의 진정한 욕망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저마다의 취향과 조금 닮아있을 무언가를 제시함으로써 끊임없이 사도록 이끌 뿐이다. 더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채우라고 주문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버리고 있는지 쉽게 망각한 채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것
“푸퓌와 도뒤는 사랑하는 이와의 평범한 삶이 화려한 조명을 받고 명예를 얻는 것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주, 아주 오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났거든……”
지하실 모험을 떠났던 푸퓌와 도뒤는 사라진 친구들이 새로운 귀여움 개발을 위한 실험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비밀을 파헤쳐 세상에 알린 뒤, 다시 슈퍼 스타의 자리로 올라설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 자리에 오르면 다시 수많은 아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지만, 둘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선택을 한다. 현대사회에서 쉽게 소비었다가 버려진 대상이면서 동시에 현대인이 가진 보편적인 욕망을 지녔던 푸퓌와 도뒤가 더 이상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망받는 대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지금 가장 각광받는 것, 유행하는 것을 소망하는 마음의 수명은 무척이나 짧으며, 심지어 주입된 욕망일 수 있다는 것. 달콤하고 환상적인 장면들을 마음껏 그려내는 작가 질 바슐레는 푸퓌와 도뒤가 향한 아무도 모르는 곳의 풍경은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지만, 세상 그 어디보다도 푸퓌답고, 도뒤다운 곳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April23_TailofTales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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