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 속 술과 황홀경의 신 디오니소스는 광기와 타락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기도 했지만, 니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열정과 도취, 쾌락의 창조적 생명력을 일컬으며 디오니소스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스 시대, 디오니소스의 또 다른 이름은 ‘해방자’였다. 인간이 자유와 쾌락의 순간을 갈망하는 한, 우리 안에 디오니소스
적 본성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의 숱한 억압들 사이에서 찰나의 해방감을 이루어주는 물질이 있으니, 바로 술이다. 이달의 토픽에서는 위험하고, 문제적이지만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본성으로 향하는 문, 술을 깊이 통찰해본다.
1-오늘도 취하는 이유
술에 취한 뒤 벌어졌던 아찔한 흑역사, 술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한심한 사건·사고들을 직간접적으로 겪다 보면 술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내 퇴근 후 한잔, 또는 반가운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기대하며 힘을 북돋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아연해지고 마는 것이다. 한 번만 더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라던 맹세, 지옥 같았던 숙취, 제정신이었다면 일어났을 리 없는 일들로 이불킥을 반복하는 나날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여전히 술을 마시는 걸까?
알코올에 의존해온 인류의 역사는 상상이상으로 유구하다. 『술의 세계사』에 따르면, 약 2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도르도뉴(Dordogne) 로셀 (Laussel) 절벽의 한 여인은, 한 손을 임신한 배 위에 올리고, 다른 한 손은 뿔처럼 생긴 물건을 쥐고 있다. 이것을 악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뿔의 좁은 끝부분이 입에서 먼 쪽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술을 담던 뿔잔으로 보는 견해가 더욱 유력하다. 일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빵보다 맥주가 먼저 (beer before bread)’ 가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흔히 농업이 문명을 가능하게 했다고 알고 있지만, 맥주에 대한 갈망 때문에 함께 모여 농경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술이 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져 온 인류의 진화사에서 취하기 좋아하는 성향은 왜 제거되지 않았을까? 이를 ‘진화의 실수’로 보는 이들이 있다. 진화 의학 분야의 창시자인 랜돌프 네스 (Randolph Ness)에 따르면 인류에게 취하기를 원하는 성향이 남아있게 된 것은 우리 뇌의 보상 체계가 취기에 자극을 받은 까닭인데, 취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구하기 힘들었던 이전에는 이러한 적응이 문제 되지 않았으나, 오늘날처럼 온갖 종류의 술을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조건에서도 이러한 보상 체계가 작동함으로써 긍정적인 수준을 넘어 술을 계속 사용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술에 대한 인류의 기호성을 설명할때 가장 널리 언급되는 ‘술 취한 원숭이’가설을 주장하는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Robert Dudley는 초기 인류가 주로 과일을 섭취했는데, 과일의 당분에 효모가 증식하여 변환된 알코올을 우연히 섭취하게 되었고, 적당량의 음주에서 이점을 발견하면서 알코올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취함의 미학』의 저자 에드워드 슬링거랜드(Edward Slingerland)는 이러한 주장들의 허점을 언급한다. 랜돌프 네스의 이론은 오늘날 인류가 비싸고 혹독한 비용을 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술과 여타 취성 물질을 포기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로버트 더들리의 주장은 우리가 너무 익은 과일보다는 적당히 익은, 에탄올이 없는 과일을 훨씬 더 선호하는 성향에 위배된다. 과일이나 곡식을 알코올로 바꿈으로써 보존에 용이했다거나, 오염된 물을 소독해 섭취하는 효과 때문에 음주가 지속되었다는 여타의 이론 또한 곡물을 죽으로 발효하거나, 물을 차로 끓여 마시는 등 훨씬 간편한 방식이 현존하기 때문에 받아 들여지기 어렵다. 이를 바탕으로 슬링거랜드는 술은 진화의 실수가 아니며, 술 자체가 인류 사회에 안겨주는 대체 불가능한 이점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인간이 진화적으로 취하도록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슬링거랜드에 따르면 우리가 술에 취하는 이유는 단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선, 술에 취하면 공공적인 성향을 유지하기 수월해진다. 인류는 비슷한 영장류나, 여타 동물들에 비해 취약한 신체 조건을 가졌다. 그러나 비정상적일 정도로 사회적이고 협동적인 성향 덕분에 그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때 여럿이 함께 마시는 술은 서로를 정서적으로 연결시키고, 스트레스나 불안감을 낮춰 자아를 무장 해제시킴으로써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는 매개로 기능해왔다. 여럿이 술을 마시겠다는 의지 자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지키는 행위이며, 인류를 지탱하는 중요한 열쇠인 것이다.
또한, 술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높인다. 인간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지 제어와 목표 지향적 행동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피질prefrontal cortex; PFC이 발달하는데, 술을 마시면 이성의 중심지인 바로 이 PFC가 손상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당장 술 마시는 행위가 금지되어야 할 것 같지만, PFC는 창의성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적이다. 술의 영향으로 PFC가 냉철한 이성과 차가운 인지를 잠시 내려놓으면, 우리는 어린아이 때의 무질서한 사고방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창의성이 촉발된다. 어른의 몸과 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어린 시절의 창의력까지 더해지면, 새로운 차원의 문제 해결 능력이 생긴다. 이러한 기억과 경험을 집단의 문화에 새기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선순환이 술 덕분에 촉진된다. 비슷한 현상을 일으키는 취성 물질들이 여럿 있지만, 술은 복용하기 쉽고 반응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으며, 그 효과가 비교적 안정적이고 오래가지 않기 때문에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다.
취성물질, 특히 술은 인간에게 우리의 유인원 본성이 부과한 한계를 벗어나 사회적 곤충과 같은 수준의 협력을 만들게 한 화학적 도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 창의성 강화, 스트레스 해소, 사회적 접촉 촉진, 신뢰와 유대 강화, 집단 정체성 형성, 사회적역할 및 계층 강화 등을 통해 취성물질은 사냥과 채집하는 인간이 농업 촌락, 마을, 도시의 군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과정은 점차 인간 협력의 범위를 넓혀갔고, 결국 지금과 같은 현대 문명을 창조해냈다.
_에드워드 슬링거랜드, 『취함의 미학』 중
2-쓰는 영광을 위해 건배
알려진 바에 의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일 ‘술시’라고 정한 시간에 신주쿠의 야경을 보며 하이볼을 마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리는데, 달린 후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헤밍웨이는 모히토가 세계적인 칵테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피츠제럴드는 43세 때, 주치의가 술을 끊지 않는다면 1년 안에 사망할 거라 경고해 금주를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에 맥주 서른 캔만 마셨다. 왜? 그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라, 흐르는 빵이었으니까.
작가와 술에 관한 이야기는 쓰자면 끝이 없다. 성경 구절을 변용하자면, 하늘을 원고지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모자랄 것이다. 이렇듯 작가들의 술에 관한 일화만 보자면, 술을 마시지 않는 작가는 없는 것 같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헤밍웨이는 글이 풀리지 않을 때 맥주를 마시면 창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했다. 하여, 나도 작가가 되고 난 후에 술을 마시고 글을 써봤다. 마침 하바나 하늘 어디쯤엔가 있는 헤밍웨이의 영혼이 한국에 왔는지, 그 덕에 그가 필력을 잠시 빌려줬는지, 놀랍게도 평소와 다르게 술술 써졌다. 너무 신기했던 나는 헤밍웨이처럼 럼주를 더 들이켰고, 하룻밤에 200자 원고지 100매에 가까운 글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 잔뜩 흥분한 채, 원고를 읽고 난 후에 깨달았다. 그것은 컴는 것을. 또한 전날 내게 임했던 것은 하바나에서 친히 날아온 헤밍웨이의 기운이 아니라, 그냥 취기 혹은 객기였다는 것을.
다시 작가들의 행동과 말로 돌아가보자.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일 작업을 ‘마친 후’ 술시를 정해놓고 하이볼을 마신다. 그렇다. 글을 쓸 때는 마시지 않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고 난 후’맥주를 마신다. 집필과 전혀 상관이 없다. 술을 마시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헤밍웨이의 말은? 곰곰이 살펴보면, 맨정신에 글을 열심히 써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밤에 한잔해보라는 뜻이다. 물론, 그는 종종 한 잔씩 걸치고 썼다. 하지만 도저히 글이 쓰이지 않을 때였다. 즉, 글이 안 써질 때 술을 마시면, 무의식의 세계에 잠재된 창조성이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하루에 맥주 서른 캔을 마신 피츠 제럴드 말이다. 그는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작품밖에 쓸 수 없다고 여겼다. 그 탓에 평범하지 않은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는데, 그건 늘 취해 있는 것이다. 취기속에서 떠오른 비범한 생각을 원고지 위에 잡아두려 한 것이다. 『낙원의 이편』으로 성공을 거둔 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은이 위대한 작가는(『위대한 개츠비』는 사후에 인정받았다), 취했을 때 써놓은 악필을 스스로 알아보지도 못하는 시간을 오랫동안 보냈다. 더 애석한 일은 그렇게 술에 기대다가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의사가 경고한 지 1년도 안 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애주가였던 나는 30대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런 사전 조사를 꼼꼼히 한 후 결심했다. 글을 쓸 때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동시에 작가들이 취기를 빌려 걸작을 써낸다는 건 사실 세상이 만퓨터 위에 정성스레 써놓은 헛소리였다 들어낸 신화라 여긴다. 물론, 헤밍웨이처럼 럼을 마시며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감히 추정컨대 그렇게 쓸 수 있는 건, 아주 긴 호흡의 장편소설은 아닐 것이다(그가 칵테일 다이키리를 마시며 쓴 『노인과 바다』 역시, 그리 긴 소설은 아니다). 나 역시 일기 형식의 에세이를 몇 권 썼는데, 대부분 술을 몇 잔 걸치고 썼다. 만취해서 쓰기도 했다. 그런 짧은 에세이라면, 피츠제럴드나 나처럼 취기에 젖어 쓸 수 있고, 심지어 자기 필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취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취할수록 단편소설을 성공적으로 쓸 확률은 낮아진다(헤밍웨이 같은 대문호가 아니라면, 더욱 더). 나아가, 장편소설을 잘 쓸 확률은 더 낮아진다. 만약 두 권 이상의 꽤 굵직한 장편소설이라면 술을 멀리하는 걸 넘어, 발자크처럼 목욕 재개하고, 수도승이 입는 가운이라도 입고 써야 할지도 모른다. 100명이 넘는 인물을 등장시키다 보면 작가 자신도 때론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리고, 야심 차게 쓴 표현이 사실은 이미 앞 챕터에서 써먹은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에게 애원하고 매달리듯 간절한 마음으로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소설을 쓸 때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기로 결심했다. 소설을 쓰기 직전에는 물론이고, 심할 때는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기간 내내 금주를 한다.
3-위스키가 점점 좋아진다면
최근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위스키 리셀을 목적으로 오픈런을하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는 기사를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 우리나라는 개인 간 주류 거래를 금하고 있을뿐더러, 위스키는 테이스팅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월 100만 원의 추가 수익을 보장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스키마저 재테크와 부수입의 대상으로 변질되었다는 이야기에 낭만이 사라진 것 같아서 조금 슬퍼졌다. 위스키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이야기와 향기를 감상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데, 이러한 현상속에서 본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여러 서적에서 위스키는 세인트 패트릭이 서기 432년에 동방에서 증류 기술을 익히고 돌아와 아일랜드에서 유럽으로 전파한 것을 그 시초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때의 동방은 당시 연금술, 즉 현재에 적용해보면 과학(특히 화학)에 해당하는 기술이 발달했던 페르시아로 추정된다. 연금술은 자연과학이 정립되기 전에 고대 자연과학과 철학이 함께 다루어진 분야를 말한다. 연금술은 크게 두 갈래로 발달했는데, 한 가지는 비금속을 가지고 금과 같은 귀금속으로 변환시키려는 연구, 다른 하나는 신성한 몸과 영생을 위한 음료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위스키의어원으로 알려진 이시커 바허Uisge-beatha는 생명의 물을 뜻한다. 문헌자료 속 위스키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172년 헨리 2세의 ‘아일랜드를 정복하고 나는 생명의 물(아쿠아 비테Aqua Vitae)를 마셨다’이다. 여러 권력자들이 마셨던 위스키가 불멸을 위한 연금술의 연장선에 있다니, 그리고 현대에 와서 알코올은 건강에 해롭다고 회자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약간의 눈썰미만 있다면, 위스키는 철자만 보고도 대략 어떤 스타일을 지향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 위스키 보틀을 자세히 살피면, 스카치위스키는 ‘whisky’, 아이리시위스키는‘whiskey’라고 적힌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세인트 패트릭의 이야기를 두고, 스코틀랜드에서는 그가 스코틀랜드인임을 강조하고, 아일랜드에서는 그가 자신들의 나라에서 증류 기술을 알렸다고 주장하며 뜨거운 위스키 종주국 논란을 여전히 펼치고있다.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위스키는 크게 이 두 국가로 나누어 생산지별 스타일을 분류할 수 있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와 인도는 영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 ‘whisky’라고 표기하며, 스코틀랜드 스타일에 뿌리를 두고 위스키를 해석하고 생산한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whiskey’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과거 아일랜드 대기근 때 농부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농사를 지었고, 이후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 위스키를 생산했기 때문이다. 한편, 가까운 국가 일본의 경우는 스코틀랜드 표기법인 ‘whisky’를 쓰는데, 이는 현재 산토리에서 소유하고 있는 야마자키 증류소의 초대 소장 다케츠루 마사타카라는 청년이 스코틀랜드에서 유학한 후, 스코틀랜드와 가장 가까운 기후 풍토 환경에서 위스키를 생산하려던 의지와 맞닿아있다.
18~19세기 초까지 위스키는 아이리시위스키의 전성시대였다. 3번의 증류를 거쳐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아이리시위스키는 19~20세기 초, 스카치위스키에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스카치위스키는 블렌디드 위스키인데, 맛의 풍미가 있는 몰트와 기타 곡물로 각각 증류하여 위스키를 만들고 숙성시킨 후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블렌딩하여 만들었다. 균형감이 뛰어난 맛과, 비교적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스템도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한편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에 접어들면서는 하나의 증류소에서 몰트를 재료로 위스키를 만드는 싱글몰트가 개별 증류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해석이 되었고, 또 증류와 숙성에 대한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어 현재는 옥수수를 주재료로 만드는 미국의 버번위스키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일본, 인도, 대만, 핀란드, 덴마크, 그리고 재작년부터는 대한민국에서도 위스키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애서가들은 자가증식하는 책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이른바 ‘방임파’인 이들이 책에 대한 수집욕까지 가졌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진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증한 장면을 공유하는 건 그야말로 담뱃갑에 붙어 있는 흡연 경고 이미지나 마찬가지일 것 같으므로 여기서는 정제된 이미지로 만나보고자 한다. 노르웨이의 세계적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책 분류 방식은 이렇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꼭 읽어야 한다고 느끼는 책… 그리하여 그는 무질서 그 자체인 서재를 보유한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필립 림의 경우, 그의 서재는 알파벳 순서도 아니고, 색깔을 맞춘 것도 아닌 채로 온갖 분야의 책이 한데 섞여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혼돈 안에서도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일반적인 정리법을 거부하는 것은 그의 신념이다. “더 이상의 일거리는 원하지 않아요. 책은 즐거움을 위한 것이잖아요!”
이토록 방대한 위스키의 세계가 혹자에게는 놀라울 것이다. 위스키에 대해 알아가고 싶다면,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좋을까? 나의 경우에는 아마존에서 ‘Whisky’를 키워드로 검색해서 상위 검색 결과 순서대로 책들을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두꺼운 책들을 끝까지 독파하기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위스키를 한 병 사서 그 증류소 또는 생산지에 대한 챕터부터 알아보는 방식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당시에는 위스키 채널이 부재했지만, 지금이라면 여러 유튜브 채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다. 최근에는 빠르게 위스키를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번역서 및 국내서들도 출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