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21
우리의 모습 바라보기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원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대학원 연구소 조교로 일하는 동안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첫 여행지는 고심해서 골랐다. 너무 멀어서도 안 되고, 너무 비싸서도 안 되고, 너무 오래 걸려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도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그때 마침 아시안게임 축구 경기에서 베트남이 16강에 올랐다. 당시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박항서 매직’이라고 할 만큼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2002년의 대한민국과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베트남의 8강과 4강 경기에 맞추어 2박 3일의 여행 일정을 짰다. 하노이에 도착해 첫날에는 8강전을 보고, 셋째 날에 4강전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굳이 그들을 보고 싶던 이유는 스무 살이던 2002년, 광화문 광장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와 닮은 사람들이 있을 하노이 광장에 가보고 싶었다.
여행을 결정하기 전 내게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월남전’으로만 기억되었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주변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1960~70년대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기 위해 베트남 파병을 결정했다. 그렇게라도 외화를 벌고 미국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아저씨는 파병 군인이었다. 맹호부대의 활약을 그의 수기록으로 읽을 기회가 있던 나는 그가 소총을 들고 정글을 누비는 상상을 하며 경외를 보냈다. 나중에 그가 통신병이었고 주로 후방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도 같지만, 그래도 참전 군인이라는 후광이 있었다. 요즘은 베트남이라고 하면 전쟁보다는 다른 걸 먼저 떠올리는 것 같다. 다낭 같은 휴양지가 유명하고, 삼성전자 휴대폰을 생산하는 곳. 나는 종종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마음이 든다. 우리가 그렇게 승리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도 괜찮은 건지, 직시해야 할 현실은 없는지….
작년에 베트남 전쟁을 연구한 젊은 문학 연구자를 만났다. 그는 참전 군인들이 남긴 수기나 인터뷰가 많이 있다며, 꼭 찾아 읽어보라고 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성찰과 돌봄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그가 추천했던 책이 『하얀 전쟁』이다. 전쟁은 승리자에게도 패배자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긴다. 정확히는, 거기에 휩쓸린 개인들에게 더욱 그렇다. 그 개인들에는 참전 군인들, 그들의 가족들, 또 전쟁 당시 베트남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포함된다. 개인이라는 미시적인 영역에서 돌봄은 더욱 필요하다. 이 책은 개인이 겪은 전쟁과 전쟁 이후의 참혹함을 잘 묘사하고 있다. 아마 저자가 실제 참전 군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행자로서 베트남에 간 나는 주로 하노이의 ‘맥주거리’라는 곳에 머물렀다. 베트남 사람들은 여기저기에 모여 TV로 아시안게임 축구를 시청했고, 8강전에서 승리했을 때는 온 거리가 2002년의 광화문처럼 사람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스무 살의 행복했던 나와 다시 만났다. 나와 닮은 이들이 거기에 있었고, 그 현장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여행 기간 동안 축구 경기 말고 내가 유일하게 찾은 곳은 전쟁박물관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축구나 전쟁, 역사 모두에 있어 베트남과 우리가 멀지 않음을 알았다. 필요한 것은 그 전쟁에 휘말렸던 모두를 서로 돌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계속 베트남 전쟁을 다룬 책들을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이 책과 같은 수기가 계속 나오기는 어렵겠으나 그다음 세대로서 우리가 가진 책임도 분명히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