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실토실한 볼과 반짝이는 별을 담은 눈, 근심 하나 없는 듯 활짝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어떻게 따라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별다른 재주를 부리지 않는데도 마음을 곧바로 무장 해제시키는 아기들의 사진과 영상은 언제나 인기가 많다. 이 책에도 그런 아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어쩐지 눈길을 더 끄는 쪽은 엄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흠잡을 곳 없는 몸매를 자랑하는 유명인 엄마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출산 후 허리도 펴지 못하고 입원실 안 작은 욕실에 겨우 도착해서 세수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씻는다고 씻었건만 거울 속 나는 왜 이렇게 푸석푸석해 보이지, 중얼거리던 내 모습과 아주 닮아 있다.
“어떤 친구의 말처럼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모든 걸 처음 처럼 보게 된다. 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세상의 모든 시선은 아기에게 집중된다. 그러나 같은 시간, 엄마로 새로 태어난 이도 있다. 이제 막 엄마가 된 이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제니 루이스Jenny Lewis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표지에는 갓난아기를 감싸 안은 엄마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엄마의 얼굴엔 눈 밑과 눈두덩은 물론이고 코와 입술에도 붓기가 남아 있다. 아기를 안고 있지만 배가 아직 불룩한 것을 보니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기는 턱을 살포시 엄마의 어깨에 얹고 작은 몸을 엄마 몸에 착 붙이고 있다. 따스한 엄마의 체온은 스르르 잠들기에 완벽할 것이다. “분만 후 24시간,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란 책의 부제를 보면 새삼 놀랍다. 어떻게 엄마가 된 지 하루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토록 안정되어 보일 수 있을까. 아마 이들이 엄마와 아기라는 각자의 새 역할을 받아들이고 서로와의 관계 맺기를 거부하지 않은 탓이리라. 그것만으로도 엄마와 아기 모두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받아 마땅하다.
“아들을 보자마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아, 너로구나. 안녕.’ 그럴 정도로 친숙했다.”
분만 후 24시간, 처음 엄마가 되었던 때를 회상해 보았다. 따뜻한 양수와 폭신폭신한 자궁 안에서 지내는 것이 더 편했는지, 아기는 자가 호흡이 힘들어 바로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힘이 약해 젖병을 빠는 것도 어려워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나고 왠지 미안해서 아기를 안아보고 싶단 말조차 못 한 채 하루를 지나 보냈다. 담당 간호사가 아기를 잠시 만날 수 있게 밖에 꺼내어 보여주었을 때 아기를 품에 안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안녕, 반가워! 그런데 미안해!’ 아기 사진을 사랑스러운 인사말과 함께 SNS에 올리는 엄마들도 많던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작고 가냘픈 아기를 품에 안고 가만 들여다보는 것뿐이었다. 그렇지만 아기 얼굴이 어째 낯설지 않다. 배 속에 있을 때 초음파 사진에서 자주 봤던 얼굴이라 그런가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내가 아기 엄마라는 것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출산과 육아가 대단히 버거운 과정이라 여겼고, 피할 수 있다면 굳이 강요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난임 치료를 받는 몇 년 동안 몸과 마음이 아프고 지치면서 그 신념은 더욱 강해졌다. 시험관 시술에 성공한 뒤 주변의 많은 축하를 받았지만 임신 기간 내내 복수가 차서 긴급 입원을 하고, 수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이 계속됐다. 이런저런 일로 자꾸 주변의 관심을 받는 일조차 신경 쓰여 눈치가 보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덜 받고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면 최대한 아무 일 없는 듯이 생활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분만일 바로 전날 저녁까지 세미나에서 발표를 했고, 출산 후에도 최대한 빨리 복귀했다.
출산 후 만난 아기는 내 눈에 무척 작고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보였다. 분명 쌔근쌔근 잘 자고 있는데도 자꾸만 눈으로 호흡을 살폈다. 신생아를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은 어찌 그리 빠르게만 흐르던지. 한편으로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는 게 왜 이렇게 낯설고 어색한지, 혹시 내가 엄마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도 들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사랑하는 내 아이를 돌보는 일이라면 늘 즐겁고 힘이 솟아야 할 텐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롭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나는 요즘 들어 우리 사회가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출산 여성들의 강인함과 회복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출산을 해도 괜찮다고 여성들을 안심 시켜 주고 싶었다. 물론 고통이 따르지만 그건 긍정적인 고통, 목적에 수반되며 모성의 여정에 들어서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고통이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강렬한 다른 감정들, 이를테면 기쁨, 모든 걸 압도하는 사랑, 새로이 엄마가 된 모든 여성들이 느끼는 의기양양한 승리감 같은 것들을 시각화하고 싶었다. 다음 세대를 두려움에 얼어붙게 만들 것이 아니라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