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5
오래된 것들에 대한 예찬
Editor. 유대란
시간이 지나서 더 아름다워지는 것들이있다. 풍상을 맞아 작고 매끄러워진 돌멩이, 숱한 발걸음으로 채움과 비움을 거듭한 골목, 색감이 은은해진 사진이 그렇다. 고목나무, 술단지, 카세트 테이프도 그런 것들이다. 거기에 입혀진 세월과 그것을 거쳐갔을 사람들의 생을 떠올리면 사물이나 공간에도 생명이 있는듯한, 그래서 그것이 마치 감각과 기억을 머금은 생명체 같은 착각이 든다. 꼬마 시절 침대맡을 지켜주던 인형을 선뜻내버리지 못하고 폐품이 된 발재봉틀에서 조모의 고단했던 삶과 다정하던 모습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에는 오래된 물건에 정령이 깃든다고 믿는 민간신앙이 있다. 그만큼 우리는 오래된 사물에서 동질감과 생동감을 느낀다. 한편 태생을 같이한 동종의 것들, 또는 그것을 알아봐주는 이가 그만큼 적어진 단계에 접어든 사물은 시대에서 소외된 외톨이 같은 외로움을 풍기고 표면을 덮은세월의 흔적은 우리에게 수명의 유한함을 통지한다. 그럼으로써 무한함에 대한 우리의 사유와 갈망을 자극한다. 거기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본명도 아닌 이름들을 가진 송 양, 하 양, 김 양, 이 양, 박 양 등 많은 레지들을 만났다. (…) 그러다 아가씨들의 이런저런 사연을 들었다. 하나같이 가슴 찡한 사연들이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이 통속의 세상 그 이상도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이야기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것은 말하자면, 나그네의 예의 같은 것이었으니까.” —본문 중
우연찮게 충무로에 있는 ‘석굴암’이라는 다방에 간적이 있었다. (간판 서체가 무려 배흘림체였다.) 197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에서나 보던 다방을 직접 가본 첫 소감은 참 멋있었다. 안쪽에 노인 여럿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전쟁영웅에 대한 찬사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윽고 사장님이 메뉴를 가져다주시면서 시화전 동인지도 한 권 건네주셨다. 내용은 민망했지만 아직도 동인지가 나온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인조가죽으로 된 소파가 무척 푹신하고 파르페잔처럼 생긴 녹색 유리잔에 담긴 커피는 달달하고 시원했다. 호기심으로 들어가본 곳이었고 기대 이상으로 쾌적했지만 머물수록 괜히 슬퍼졌다. 위치로 보나 크기로 보나 한때 ‘핫플레이스’였을 그곳에서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어르신들이 아무도 보러 와주지 않는 시화전을 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날 이후 다방에 대한 난데없는 호기심과 애정이 생겼다. ‘여행 생활자’ 류성용의 『다방 기행문』을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단한 목표도, 꽉 짜인 일정이나 사전조사도 없이 전국의 다방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마주친 오래된 풍경에 관한 책이다. 여행이 어때야 한다는 강박, 더욱이 여행책은 어때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운 책이다. 저자는 스쿠터로 28개월간 전국을 누비며 다방에 들르고 이발소에도 가고 잊혀져가는 오래된 풍경을 안주 삼아 홀로 막걸리잔을 비우기도 한다. 여행길에서 스친 짧은 인연들, 그리고 나중에 다시 가보면 아마 없어졌을 공간들의 운명에 대해 달관한 듯 하면서도 아쉬워하고 미리 그리워한다. 시종일관 애틋하고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이어져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와인을 딸까 맥주를 딸까 하는 고민에 시달리게 한 책이었다. 완독한 후에야 알았다. 저자의 여정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거나 추억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오래된 것들에게 바치는 송가였다는 것을.
“내가 자부한 그 공간 지각 능력은 부질없는 집착이었다. 보이는 것은 침묵의 세계였으며 아마도 그게 이 절을 세운 목적이었다. 이 폐허는 쓸모없게 된 사찰이 아니었다. 여전히 우리 삶의 부질없음을 끊임없이 가르치는 ‘보이지 않는 절’이었던 것이다.” —본문 중
박노해 시인의 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를 서두에 내건 이 책은 건축가 승효상이 오래된 공간을 통해 시간과 삶에 대해 깨우친 것들을 써내려간 것이다. 그는 국내외 여행길에서 만난 공간의 건축적 구조와 기능을 설명하며 거기서 얻은 지혜와 철학을 이야기해준다. 그가 거닌 공간의 목록에는 여전히 찬란한 위용을 뽐내는 대규모 건축물이 있는가 하면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폐허가 된 사찰의 대지도 있고 중도에 단절됐다가 다시금 이어지는 적막한 길도 있다. 저자는 보이는 것에서는 역사와 삶을 읽고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시간과 무한함을 체감한다.
“여행이 현실의 노여움과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일축한 그는 여행의 목적이 “진실의 발견”에 있다고 말한다. 통용되는 지식과 가공된 이미지를 통해 생긴 상상 속의 여행지에직접 가서 비로소 현장에 발을 딛고 섰을 때 기존의 환상은 무너지고 목적지의 실체와 진실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험을 찬양한다. 타자화된 이방인이 되어봄으로써 새로운 각도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비교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비록 신선함이 진즉 고갈된 표현일지라도 ‘길 위의 철학자’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공간의 질감은 그 공간을 표현하는 낱말과도 관련이 깊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섬세한 밝음, 옅은 어두움’이라고 하겠다. (…)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그 표현이 백열전구에 적절한 것 같다. 백열전구가 다른 광원으로 대체된다는 것은 ‘어슴푸레하다, 은은하다’라는 식의 표현이 그저 ‘밝다, 환하다’로 바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 중
사물에도 이력이 있다. 그것을 발명한 부모가 있고, 탄생한 출신지가 있으며, 널리 사랑받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다. 디자이너 김상규는 사물의 이런 이력을 되짚어본다. 만듦새, 소재, 기능,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것이 사용자의 경험과 어떤 관계를 맺어오며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그중 사라졌거나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사물들을 다룬 첫 장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 의.’는 오래된 물건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관심 밖의 물건이 되었거나 최신 발명품에 자리를 내어주며 주변에서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백열전구, 필름 카메라, 타자기, 디스켓 같은 물건들이다.
추억팔이나 빈티지 콘셉트 인테리어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들이기도 하지만 이 사물들이 사라져가는 게 아쉬운 건 관상용 가치가 뛰어나서만은 분명히 아니다. 백열전구는 LED에 비해 밝기와 전기 효율 면에서 현저하게 뒤처지지만 얼굴에 드린 세월의 흔적을 은은하게 해주는 미덕을 베푼다. 터치로 작동할 수 있는 기기가 손끝의 감각을 둔하게 한다는 걸 깨달은 건 버튼식 기기를 이미 폐기한 후였고, 디지털 카메라는 편리함을 선사한 대신 신중함을 앗아갔다. 그나마 남아 있는 손수레는 이동하는 거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운용하는 이들이 꽤 근거리에 기거하는 이들일 거라는 생각, 즉 이웃일 거라는 생각은 푸근한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니까 점차 사라져가는 것들을 아쉬워하고 이미 사라진 것들을 애도하는 태도는 참 타당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