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역경을 이겨낸 책의 승리, 시애틀 중앙 도서관
The Seattle Central Library
에디터: 지은경, 세바스티안 슈티제 Sebastian Schutyser
사진: OMA, The Seattle Public Library
시애틀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흥미로운 형태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은 스타 건축가의 뽐내기를 위해 만들어진 전유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기구한 이야기들과 수많은 도전의 현장을 품고 있다. 앞선 기술과 지식의 원천들이 모인 시애틀, 그 도시를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거대한 규모의 자본이나 수많은 사업가가 소유한 높은 빌딩숲이 아니다. 바로 책으로 지식을 이어가며 새로운 지혜를 낳는 시애틀 공공 도서관이다.
시애틀 공공 도서관은 굴곡진 기복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퓨젯사운드 기슭에 정착한 뒤 공공 도서관의 모습이 갖추어지는 데만 장장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1868년 7월 30일, 5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도서관 협회의 형성을 위해 모였다. 이들은 향후 20년 동안 아주 작지만 도서관의 건립이라는 성공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1891년 파이오니아 광장에 드디어 5층 높이 건물의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도서관은 10년 동안 지방 의회의 온갖 간섭을 견뎌냈다. 제한된 예산 때문에 도서관 건물의 두 층이 다운타운으로 이동해야 하는 때도 있었고, 여러 재정적, 집행적 위기를 거치며 도서관 폐쇄 위기에 봉착한 때도 있었다. 그리고 1899년, 행운의 여신이 드디어 시애틀 공공 도서관에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시에서 가장 우아한 구조를 자랑하는 아이슬러 맨션을 임대한 것이다. 그러나 2년 후 또다시 재앙이 불어닥쳤다. 1901년 1월 2일 고요한 이른 아침, 나무로 지어진 아름다운 아이슬러 맨션이 화재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화재로 도서관 내부에 보관된 모든 중요한 장서와 유물이 파괴되었고, 도시는 새해 아침부터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4일 후 시의 후원자였던 앤드루 카네기는 방화시설이 갖춰진 새로운 도서관 구축에 합의했다. 새 도서관 건축 프로젝트의 공모사업은 거대한 기둥과 넓은 내부 공간을 가진 전통적인 보자르Beaux-Arts 디자인으로 결정되었다. 운영 첫해 만에 책 대여의 수가 급증했다. 이 무렵은 도서관 성장을 위한 무모한 시도와 투자가 가득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성장의 시간은 또다시 크나큰 위기의 시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달에 인플루엔자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시애틀 시에서만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도시는 5주 동안 도서관을 포함한 모든 공공 기관과 공공모임 장소를 폐쇄했다. 그리고 도시는 한동안 깊은 우울감에 싸여 있었다. 실업자들이 중앙 도서관을 대피소로 점령했고 같은 시기 도서관 예산이 대폭 감축됐다. 재정자원은 증발한 상태에서 무일푼의 책 대여자 수가 급증하자 도서관은 몇 배의 고통을 더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나가야만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사람이 노화된 건물이 중앙 도서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1960년 같은 대지에 새로운 중앙 도서관이 솟아올랐다. 새 도서관은 미국 도서관 최초로 에스컬레이터를 갖추었고 책을 픽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창이 설립되었으며, 예술적인 디자인을 갖춘 신개념의 도서관으로 거듭났지만, 대중은 이러한 현대적인 발전에 둔감했다. 오랜 시간 동안 너무도 초라한 재정의 역경과 무관심을 겪어내고 새롭게 마련한 장소는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문제들과 직면해야만 했다. 도서관은 젊은이들이 주로 이용했는데, 그들이 다녀간 뒤에는 장서들도 모든 컬렉션도 초토화되었다. 심지어는 책을 아우르는 주제 전체가 사라진 영역도 생겼다. 도서관이 누더기로 변모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70년과 1980년 사이 도서관은 예산 압박과 여러 논쟁으로 또다시 힘든 시기를 맞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