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눙쿨루스, 달리아, 스타티스, 헬레니움… 꽃이 좋다는 이유로 언젠가 들었던 꽃 수업에서 생소한 이름의 이국적인 꽃들을 잔뜩 만났다. 하지만 메모지에 급하게 받아 적었던 난해한 이름들은 금세 가물거렸고, 예쁘게 다발로 만들려던 절화들은 재주 없는 손안에서 빠르게 시들곤 했다. 내 사랑이 꽃을 괴롭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에 괴로워져서 얼마 가지 못해 그만두었다. 마음만으로 될 일이 아니라면, 대체 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걸까? 유년 시절, 할머니 집 앞에 있었던 석류나무 한 그루가 어른거렸다. 여름이 문을 열 듯 말듯 하던 계절, 석류나무의 꽃망울이 피어나기를 기다리고, 환하게 맞이한 뒤, 절로 고개를 떨구던 순간까지 그저 바라보았던 나날들. 빨간 구슬이
잔뜩 박힌 듯한 석류 반쪽을 받아 들고서 한 알씩 오물거리며 다음번의 꽃을 기약하던 마음까지. 꽃은 그렇게 사랑하는 건가, 싶어졌다. 가만히 바라보고, 그리하여 그 꽃을 이해하고, 재회를 기다리며 시와 그림을 창조했다는 옛이야기가 가득 담긴 『알고 보면 반할 꽃시』는 부러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근사하게 꽃을 향유할 수 있는지, 꽃이 얼마나 깊은 사유의 대상인지 일러준다.
불우한 지식인의 투영체, 진달래와 수선화
초봄에 피는 진달래의 한자 이름은 ‘두견화(杜鵑花)’다. 중국 촉나라에서 쫓겨난 임금 망제가 고국을 그리워하다 죽었는데, 그넋이 두견새가 되었고, 이 산 저 산에서 우느라 목에서 난 피가 꽃잎을 붉게 물들였다는 고사가 얽혀 있다. 험한 터에 뿌리내려 온갖 풍파에 시달리는 이 쓸쓸한 꽃을 두고 최치원은 이런 시를 지었다.
진달래꽃
"바위틈에 뿌리 위태로워 잎이 쉬이 마르고 바람과 서리에 시달려 쇠잔했음 알겠네. 가을 아름다움 자랑하는 들국화 이미 넘치거늘 응당 겨울 추위 견디는 바위의 소나무 부러워하리. 가여워라, 향기 머금고 푸른 바다 굽어보는데
누가 붉은 난간 아래 옮겨 심을까? 무릇 초목과는 다른 품격이거늘 나무꾼이 똑같이 볼까 두렵구나."
_최치원, 『계원필경집』 권20
여기에는 신분 제약과 국운의 한계로 뜻을 다 펼치지 못한 지식인의 한탄이 깃들어 있다. 신라 시대 6두품으로 태어난 최치원은 골품제의 벽을 넘기 위해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7년 만에 외국인 과거 시험에 급제했다.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벽이 끊임없이 그의 발목을 잡아, 결국 스물아홉살에 고국으로 귀국한다. 당나라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신라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높였지만, 신라의 혼란한 정국에 회의를 느낀 그는 마흔 살에 정계에서 은퇴한다. 지식인으로서 겪은 방황과 번민은 그가 쓴 시문들에 잘 나타나 있다. 위의 시 역시 바위 사이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 품격을 알아보는이 하나 없는 상황에 피어 있는 꽃에 자신의 현실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수선화가 ‘추사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영롱하게 피어나는 이 꽃을 추사 김정희는 유독 아꼈다. 수선화를 키우는 법부터 수선화와 관련된 여러 기록을 남기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을 정도다. 그러나 9년간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한양에서 수선화가 귀하게 여겨지는 것과 달리, 제주도에서는 흔하고 귀찮은 꽃으로 취급받는 것을 보며 매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뛰어난 업적과 공을 이뤘음에도 남은 긴 생을 유배지에서 보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투영됐기 때문이 아닐까.
수선화
"오롯한 겨울 마음 둥글게 늘어뜨리니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 차갑게 주위를 둘렀네. 고상한 매화도 뜨락의 섬돌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가에서 진정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_김정희, 『완당전집』 권10
고고한 군자 vs 멀티플레이어, 연꽃과 치자꽃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이는 연꽃이 군자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인 이원은 다음과 같이 연꽃을 칭송하는 시를 남겼다.
연꽃을 읊다
"물 위로 바람 부니 멀리 향기 퍼지고 깨끗하고 곧게 자란 것이 뭇꽃과 다르네. 생각건대 염계가 당시에 사랑한 것은 푸른 잎과 붉은 꽃 때문이 아니었으리."
_이원, 『용헌집』 권1
이처럼 연꽃이 그 정신적 가치로 인해 사랑받았다면, 다채로운 실용성 덕분에 사랑받은 꽃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치자꽃이다. 동북아 여러 나라와 대만, 인도 등에 분포하는 치자꽃은 고려 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나라 남해안 부근에 자생한다. 짙은 향기가 특히 매혹적인 이 꽃을 두고 정약용도 “차 끓이는 향기보다 낫구나”라며 칭송한 바 있다. 조선 초기 문신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꽃의 희고 윤택한 색, 맑고 부드러운 향기,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잎, 열매에서 나오는 노란 색소의 유용성을 치자의 네 가지 아름다움으로 꼽았다. 중국 최고 시인인 두보가 남긴 다음의 시는 치자의 여러 매력을 압축한 가장 대표적인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치자
"치자는 여러 꽃나무에 비교하면 인간 세상에 참으로 흔하지 않네. 몸에는 색소가 쓰이고도에는 향기가 온화함을 해치네. 붉은색은 풍상을 겪은 열매에서 취하고 푸른색은 비와 이슬 맞은 가지에서 보네. 너를 옮겨 심을 뜻이 없음은 강 물결에 비친 모습이 귀하기 때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