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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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7
에세이의 탄생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고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지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나이를 먹으며 늙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는 것은 쇠약해지는 건강과 외모뿐만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며 좋은 것은 많은 일 앞에서 좀 더 의연해지거나 담대해지고 지혜로워진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사실을 상기하면 문득 미소가 번질 때도 있다. 반면 자신의 변화와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고통이나 불행, 슬픔, 혹은 쓸쓸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또다시 초보자가 되고 만다. 강하게만 보였던 부모가 약해져가는 모습을 겪고,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씁쓸함을 한번 더 겪고, 그렇게 삶에 끝없이 스멀스멀 찾아오는 것들을 우리는 모두 감당해야 한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한 중년 여성이 겪게 되는(그러나 누구나 지나야 하는 쓰라린 현실) 이야기는 도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왜 이리도 쓸쓸한가를 깨닫게 해준다. <다가오는 것들> 속 이야기가 누구나 겪게 되는 아픔이라서 쉽게 공감되고, 그래서 ‘다가오는 것들’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할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면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는 감히 자신의 삶에서 상상하기 힘들었던, 또 너무도 급작스럽게 찾아온 불행 앞에서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바라보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는 절대 그럴 수 없겠지만 훗날 더 큰 후회를 막기 위해 의연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쩌면 모든 일이 들이닥칠 수 있는 세상이니 온갖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하는 것일까? 해답은 없는 듯하다.
19살의 아름답고 건강한 청년 시몽 랭브르는 친구들과 서핑을 하고 귀가하던 새벽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구조대가 그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하지만 그는 신체적으로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는 비가역 코마 상태에 빠진다. 의사는 결국 그에게 뇌사 판정을 내리지만 그의 심장은 너무도 활기차게 뛰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시몽의 장기를 필요로 하는 중환자들이 있다. 아직도 강하게 뛰는 심장으로 인해 시몽의 육체는 살아있는 듯 여전히 아름답지만 가족은 짧은 시간 안에 장기기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책은 시몽의 장기이식을 결정하는 순간의 온갖 딜레마, 처절한 감정적 갈등, 그리고 장기가 적출되고 이식되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19년 동안 시몽의 삶을 이어준 심장, 그 심장 안에 아로새겨진 짧은 생에 관한 기록들이 하나하나 나타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시몽이 사랑한 소녀도 등장한다.
장기기증이라는 아름답지만 비통한 단어, 그 단어를 통해 누구는 희망을 볼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이식이 가능한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타깝지만 가장 비통한 순간에 꺼내 들어야 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장기기증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결정의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사랑하는 가족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은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안타까운 젊은 인생을 마감시키는 이 이야기는 극도로 슬프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답기도 하다. 작가는 우리의 정신과 육체, 특히 육체라는 것이 삶에서 가지는 의미를 멋진 문장들로 서술한다. 그리고 시몽의 부모가 느껴야 했던 비통함, 오열을 우리 모두의 공감을 살 만큼 세밀하게 묘사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가족 구성원의 지난 삶은 더없이 특별하고 소중하다. 그리고 그 삶의 대부분은 다른 가족이 몰랐던 것들이 더 많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무엇에 기뻐했고, 또 무엇을 싫어했으며, 어떤 일에 심장이 곤두박질쳤을까? 만약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우리의 삶, 그런데 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마주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일까? 마지막 질문은 영원히 풀지 못하는 시험 문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