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9
어벤져스로 읽는 발터 벤야민
Editor. 이희조
지식과 지혜가 함께 자라길 바라는 잡식 독자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의 여유를 지키고자 악착같이 노력합니다.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의 대표 저작으로 흔히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꼽습니다. ‘아우라aura’라는 단어와 그 개념을 탄생시킨 이 저작은 사진기술이나 영상기술 등 산업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논술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어렵고 재미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읽고 싶어지도록 한번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마블 시리즈를 빌려서 말입니다.
피란델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영화배우는 [이런 기계장치 앞에서] 자신이 추방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는 정체 모를 불쾌감과 더불어 형언하기 어려운 공허를 느끼는데, 그 원인은 그의 몸이 결락(缺落)증상을 겪는 점에 있다.”
우리는 가끔 “CG 없는 마블의 실체?”와 같은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어벤져스 촬영자 비하인드 컷이라는 부제의 기사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로다주)가 화려한 수트를 입고 있는 게 아니라 볼품없는 무채색 티셔츠를 입고 빨랫줄 같은 와이어를 매단 채 폴짝 뛰고 있습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실체”는 또 어떤가요. 파란색으로 칠해진 간이 풀장에 띄워진 모형 배에 앉아 진짜 호랑이가 아닌 파란색 인형을 쓰다듬으며 오열하고 있는 주인공 파이를 보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립니다. 연극 배우와 영화 배우가 다른 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 배우는 자신의 배역을 온전히 지배하지 못하고 기계장치 앞에서 감독의 주문을 따를 뿐입니다.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시사회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그러니 마블 배우들은 사실 엄청난 공허감과 치욕을 느끼면서 촬영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붕괴’입니다.
사진의 세계에서는 전시적 가치가 제의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밀어내기 시작한다.
걱정할 건 없습니다. 이게 바로 벤야민이 말한 예술 개념의 변화입니다. 더 이상 예술은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여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라스코 벽화는 동굴 깊숙한 곳, 누구도 볼수 없는 곳에 그려졌습니다. 중세 교회의 성모상은 거의 1년 내내 누구도 볼 수 없도록 덮인 채로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술적 목적에 의해, 하나님에게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구도 영화를 자기 혼자 보려고 만들지 않습니다. 비로소 예술은 ‘보기 위해(전시)’라는 기능과 ‘대중’이라는 수용자를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전시 가능성이 큰 예술들이 살아남게 됩니다. 기술적 복제가 탄생시킨 영화가 그렇고, 사진이 그렇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영화를 가리켜 ‘노예를 위한 심심풀이’라며 비판하곤 했지만 벤야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중을 사로잡는 영화의 혁명적 가능성을 긍정했습니다.
영화계는 아우라의 위축에 대항하기 위해 스튜디오 바깥에 인위적으로 ‘유명인personality’을 만들어낸다.
마블은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로다주는 엄청난 호응을 보여준 한국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배우가 뭐도 아닌 기계장치 앞의 소도구마냥 가짜 연기를 하는 걸 알고도 대중들이 이렇게 배우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영화가 자본과 결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영화산업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스타로서 스크린 밖의 ‘영웅’을 만들어냅니다. 스타들의 행보 하나하나가 또 다른 신화가 되고 환상이 됩니다. 로다주는 진짜 ‘토니 스타크’는 아니지만, 가짜 아우라를 입고 관객을 모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벤야민은 이러한 자본과의 결탁에 있어서는 영화 산업을 비판했습니다.
예술은 더 이상 제의에 근거하지 않고, 어떤 다른 실천, 즉 정치에 근거를 두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으며 곧 노동자들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던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영화예술의 가능성을 긍정했던 있유는 고도의 편집기술로 현실보다 현실 같은 영화를 만들어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급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시즘의 공포에 휩싸였던 유럽 지식인으로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것은 공산주의의 실현, 그리고 이를 위한 대중들의 단결과 연대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벤야민의 뜻대로 발전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영화관을 나온 관객들은 혁명을 일으키러 거리에 나서지 않습니다. 과연 벤야민이 지금의 마블 영화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