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어린이에게로의 초대
에디터 : 김수미 전지윤 김수미 김지은
UN아동권리협약의 사상적 근거가 된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철학가 야누슈 코르착은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이라 말했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 아이들이 자꾸만 사라지는 현실은, 작고 약한 존재들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부재를 반증하는 게 아닐까? 노키즈존과 같이 아동 차별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팬데믹까지 덮치면서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아이들. 학대와 되풀이되는 사고, 무한한 경쟁에 내몰린 채 힘없이 쓰러지는 아이들. 아이들은 미래의 주인이기 이전에, 동등한 자격으로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다. 어린이가 사라져가는 반쪽 세상에서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아이들을 잃는 것은 결국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절박한 깨달음을 안고 어린이에게로 우리의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1-어린이가 비추는 것
하루가 멀다고 어린이와 관련한 각종 사건·사고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이들이 안전한 삶을 살도록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대로 안심해왔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세상은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 안일한 태도였나, 요즘은 자꾸만 돌아보게 된다. 지난해 3월 도로교통법시행령 개정(일명 ‘민식이법’)이 화두에 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보호구역은 1995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나 오늘날까지 운전자들에게 크게 경각심을 심어주지 못했다. 여전히 어린이보호구역에서만도 연간 500여 명의 아이가 사고를 당하는 현실 속에서, 지난 개정법은 보호구역 내에서만이라도 어린이 보행자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운전자에 대한 과잉 처벌이라는 불만과 ‘아무리 조심해도 튀어나오는 아이를 어떻게 하냐’는 식의 항변이 앞다투어 터져 나왔고, 찬반 논란은 정치적 프레임까지 덧씌워지며 격렬해졌다. 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국민청원이 35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고, 법을 풍자하는 게임이나 조롱이 이어지기도 했다. 법안에 대한 건강한 사회적 논의는 필요한 과정이지만, 민식이법 관련 논쟁은 어느새 도를 넘었다. 심지어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이 중심이어야 할 문제에서 정치적 공방, 속도 우선주의로 인해 아이들은 또다시 뒤로 밀려났다. 학교 앞 건널목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어린이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반성은 제쳐둔 채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성난 모습이 가득했다.
2-아이들의 빈 자리
“학교에 공부만 하러 가는 아이는 없고, 밥 먹으러도 가고,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집에서만 지낼 수 없으니 가서 있을 곳으로도 학교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간이 모두 폐쇄되고 정지됨으로써 아이들은 많은 기회와 경험, 그리고 함께 그 기회와 경험을 나누고 해내고 뒹굴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이 고립과 외로움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
고 있습니다. 지금이 존재감을 확인하기 가장 좋은 기회라고 말하던 아이는 무척 걱정됩니다.” _김현수,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 것들』 중
학원 스케줄이 빡빡하다는 이유로 하교 후 놀이터는 꿈도 못 꾸는 요즘 아이들. 놀이를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더 이상 모험심과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황사와 미세먼지가 극심해진 탓에 밖에서 뛰어놀 수 없는 날이 더 많아졌고, 설상가상으로 2020년을 강타한 팬데믹은 학교가 문을 걸어 잠그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야기했다. 새 학기, 새 학년이 시작되어야 하는 3월, 교문은 굳게 닫혔고 삼삼오오 가방을 메고 등교해야 할 아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6월이 되면서 겨우 개학은 했지만 아이들은 교실 안에서 투명 칸막이로 막은 자기 자리를 떠날 수 없었고, 밥을 먹을 때에도 옆 친구와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그나마도 며칠 가지 못했다. 다시 방역 조치가 상향되어 재택 수업이 재개되었고, 어느덧 아이들은 온라인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마주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되었다. 뉴노멀 시대의 학교생활이 온통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아이들은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모두 사라진것만 같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는 『코로나로 아이들이 잃은것들』에서 코로나 시기 6개월 동안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가 후퇴되었다는 영국아동위원회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재난 상황에서 약자는 자기 자신이 약자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는데 우리 아이들도 이 같은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바로 자존감, 정체성, 자유가 사라지는 상실의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어른들에게도 여간 견디기 힘든 게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개학 연기와 휴교, 원격 수업 등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고 외출할 수도 없는 상황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 이를 두고 김현수는 사회가 아이들을 논의에 참여시킨 적도, 의견을 물은 적도 없이 그저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아왔다고 지적하면서 아이들을 주체적인 존재로 대할 것을 제안한다.
3-생각하는 어린이와 어린이에 대한 생각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어떤 일은 처음에 내가 어땠는지 그 지점이 어디쯤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한다고 해도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쌓아온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바로 그 처음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처음처럼 조그맣고 처음처럼 약하다. 어른이 어린이를 도저히 못 이기겠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수사적 표현일 것이다. 어른은 어린이를 못 이길 수가 없다. 상대적으로 강한 존재인 어른은 어린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서열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린이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아무리 약해도 동등한 동료이며 그의 생각과 의견은 차별 없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어린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이미 오래전 지나온 출발점에 서 있는 그 작은 동료 시민의 마음과 형편을 짐작하는 일이다.
육아서의 고전 『Baby and Child Care』를 쓴 벤자민 스폭 Benjamin Spock은 “아기는 인류의 전체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어 다니던 아기가 두 발로 서는 순간은 인류가 직립 보행을 시작하던 역사적 순간을 재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가족의 품을 떠나 혼자 움직이고, 모르는 사람이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세계에는 게임의 규칙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스폭의 이러한 반복 모델 이론은 어린이의 순조로운 발달과 앞으로의 성장을 지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철학교육학자 개러스 매슈스Gareth Matthews는 스폭의 모델이 “어린이는 전(前)과학적이고 전(前)합리적 세계에 산다”고 여기는 어른들의 거만함을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한다. 어린이는 아직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이나 배운 바가 적어서 어른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어른은 어린이가 발달 과정상의 차이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어려움을 배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린이의 생각이 어른보다 더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종종 어른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명석하고 합리적이며 새로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어른들은 학교와 현장에서 공부한 복잡한 원리와 이론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이것이 어른이 어린이보다 우월함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적지 않은 어른들이 어떤 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반응을 보인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어린이에게 배워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어린이가 인류의 초기 역사에 가깝다면서 자신들은 문명이 융성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원시 부족사회의 일원처럼 여기는 것이다. 어린이의 발달에 ‘나이’라는 서열을 두고 사고하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율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독립적이고 철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어떤 일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 린이’라는 호칭을 붙이면서 그들이 모든 일에 몹시 서투를 것이라고 전제하고 희화화하는 풍토도 어린이를 업신여기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 생각이 담긴 목소리를 들려주는 문학이다. 어린이의 역동적인 성장을 증언하는 문학이기도 하다. 윤복진의 1930년 작품인 동시 ‘씨 하나 묻고’(『꽃초롱 별초롱』, 창비)에는 기다림과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나온다.
“봉사 나무(봉숭아)/ 씨 하나/ 꽃밭에 묻고//하루 해도/다 못 가/파내 보지요.//아침 결에/ 묻은 걸/ 파내보지요.”
이 시 안에는 꽃을 기다리면서 씨를 묻는 아이의 마음과 그 씨가 싹트는 걸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이 나란히 담겨 있다. 봉숭아꽃을 보려면 씨앗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이도 안다. 그러나 궁금함도 참을 수 없다. 어린이들은 딜레마를 즐기고 사랑한다. 어른들은 실리가 됐든 명분이 됐든 입장 정리를 택하는데 비해 어린이는 딜레마와 맞서면서 고민하고 실행하고 실패하면서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