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Chaeg : Art 책 속 이야기 예술

아름다움만이 진짜라는 걸 증명한다
The Collector 신상호

에디터: 지은경
사진: 신형덕
인물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 © Sebastian Schutyser

수집이라는 단어는 시간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모아 양적으로 그 수를 늘리는 행위가 바로 수집이다. 따라서 수집은 한두 번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과 수차례 반복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오랫동안, 과거의 것부터 현재의 것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곁에 모으는 사람을 ‘수집가’라고 부른다. 그는 물건을 수집하지만 그가 수집하는 물건은 물건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간을 수집하고 생각을 수집하며 기억을 수집한다. 수집가에게는 수집의 행위가 곧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며 삶 그 자체다. 훌륭한 심미안을 가지고 오랜 시간과 장소에 얽힌 긴 이야기들을 수집해온 작가 신상호. 그의 꽁꽁 닫혀 있던 보물 창고의 문이 열렸다.

수집가의 삶
정신분석학자들은 ‘수집’을 인간이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뭔가 특별한 형태의 실체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 필요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행위라고 분석한다. 수집가들은 수집에 몰두했을 당시에는 그런 특정한 물건의 진동 에너지를 가까이 끌어와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수집하는 물건들을 자신의 곁에 놓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끝없이 변화한다. 그리고 특히 수집가들은 이 시간이라는 존재와 항상 실랑이를 벌여야만 한다. 실체가 필요했던 시간은 수집가의 영혼이 그 에너지를 자신의 삶과 융합하는 기간으로 국한된다. 그것이 끝나면 방랑자 같은 수집가는 또다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 괴롭고도 피로한 싸움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싸움을 멈출 수가 없다. 이미 답이 정해진 싸움이라 해도 그냥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괴로움 끝에 찾아오는 찰나의 기쁨을 거부할 마음이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있지도 않은 것이다.

신상호는 평생 흙과 불의 다양한 성질을 탐구해온 예술가이자 전통 도조를 현대 조각으로 혁신시킨 혁명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과 산업미술대학원장을 지낸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작가다. 그의 작품은 영국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과 대영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도자박물관, 일본 기후현 현대도예미술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아프리카 미술의 원초적인 에너지와 시간성에 매료되어 수십 년간 수집에 몰두한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수집벽은 아프리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프리카 조각품부터 중국 명나라 시대의 청화백자들, 줄루족의 화려한 비즈 장신구부터 커다란 컨테이너와 탱크, 하다못해 구들장으로부터 뽑아낸 녹슨 파이프에 이르기까지 그의 수집에는 어떤 한계나 경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의 마음을 건드리면 그뿐이다. 수집가로서가 아닌 작가로서 펼치는 그의 작품세계 역시 영역의 한계나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의 작품은 회화와 도자, 도자와 건축, 도자와 오브제의 결합을 시도하는 도전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가 이렇게 영역과 장르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를 원한 이유는 그가 자주 하는 말인 “I’m hungry”라는 한마디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항상 배가 고프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끝내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그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것에 몰두하게 한 것이다.

“나는 흙이라는 재료가 좋아서 그걸 선택한 후 흙에 대해 싫증이라는 것을 느낀 적이 없어요. 그런데 미술계에서 흙이라는 이 무궁무진한 소재는 한 번도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었어요. 항상 어딘가에서 한계와 벽을 만나고, 고정관념들로부터 과소평가되고, 꼭 서자 취급을 받아온 것이지요. 나는 그것이 항상 분했어요.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유들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더니 막 오기가 생기더군요. 지금에야 미술과 페인팅, 건축 등 많은 분야에서 경계의 날이 모호해지고 융합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당시엔 그런 배고픔과 목마름, 오기로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어요. 그런데 그 감정들이 나를 살아 움직이게 했던 것 같아요. 수집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작품의 연장선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작품을 만들듯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눈을 치켜 뜨고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굶어 죽기 싫은 간절한 마음처럼 나는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미치도록 절실하게 찾아다녔지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 아름다운 것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를 상상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치가 떨리는 병에 걸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병에 걸리면 도무지 만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돼요. 치료제도 딱히 없어요. 그냥 계속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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