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9
신비한 세계의 속내
Editor. 김선주
읽고 싶은 책은 날로 늘어가는데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독자.
작은 책방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책들을 수집 중.
‘무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 얻어진다. 한복을 입고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춘다든지, 귀신에 들려 엉엉 울거나 호통을 친다든지, 굿을 해야 한다며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든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미지가 이러하니 오히려 기독교나 불교보다 한국 민간신앙과 가장 맞닿아 있는 종교임에도 무속과 무속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어디 얼마나 잘 맞추는지 보자며 시험해보는 사람도 있고, 비웃거나 불쾌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다못해 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무속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과연 기뻐하고 응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무속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 모습이 전부일까? 『무巫』는 그러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책이다.
『만화요리책』 『동이귀괴물집』 등 기발하고 재미난 책을 펴내기로 유명한 ‘더쿠문고’의 고성배 편집장은 주술사나 사기꾼으로 그려지는 무속인들이 조금 더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보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들의 진짜 삶의 곡절을 들어보았다. 그렇게 6명의 무속인을 찾아가 어떻게 무속인이 되었는지, 실제 삶은 어떤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 여러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담았다. 귀신이나 이상한 이야기보다는 무속인이라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이 책의 핵심이다. 책을 디자인하면서도 무속인의 화려한 색감이 그들의 이야기를 방해할까 우려해 일부러 흑백 사진들로만 채웠다. 반면 전통색인 오방색과 오간색이 화려하게 입혀진 표지는 그들의 화려한 겉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모든 인터뷰를 관통하는 두 가지 중심축은 한(恨)과 업(業)이다. “사연 없는 무당 없다”라는 말처럼 저마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있다. 무속인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한번 내림굿을 받으면 업(業)으로써 평생 가져가야 하기 때문이다. 가수 지망생, 교회 집사로 잘살다가 갑자기 점사를 봐주고 굿을 하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나 가족이 아프거나 죽는 일을 겪고 나서야 그 한(恨) 때문에 무속인의 삶을 받아들이고, 자신 역시 다른 이의 한을 풀어주며 살게 된다. 이들은 자신의 일이 방울 흔들며 춤추는 일이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비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로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위해 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병이 있을 때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듯 점집에 찾아와 속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많단다. 하지만 힘든 일이 없을 때는 점집을 찾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찌 보면 끝없이 외로운 직업이기도 하다.
어딘지 모르게 신비하고 궁금한 존재인 무속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벗기는 여러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결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퇴근하면 집으로 가는 일상은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편한 언니 오빠처럼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한 말이 저 사람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의 속내를 듣다 보면 마냥 괴이하고 무섭게만 보였던 그들의 일도 결국 하나의 평범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돌아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안고 있는 직업적인 고충과 그 무게를 알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여기 여섯 무당의 이야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무당도 사람이에요. 욕심도 탐심도 성냄도 있고, 울기도 웃기도 하고요. 뭔가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