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억 년 전 우주에서 격렬한 충돌이 발생하며 지구가 탄생했다. 대기도 희박하고 생물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황량한 지구에서 뜻밖에 생명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등이 결합해 만들어진 물과, 이산화탄소가 단순 유기물과 결합하면서부터다. 지구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의 큰 갈래 중 하나인 식물은 초반에 식용, 약초, 독초를 구분하는 정도로 취급되었다. 훗날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의식주에 필수 요소로 인식되며 지금까지 꾸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발견된 식물의 가짓수만 해도 55만여 종이 넘는다. 환경 오염, 미래 식량 문제 등을 이유로 오늘날 식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행인 한편 인간의 이기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새삼스럽지만 식물과 동물은 같은 원소로 이루어진 생명체다. 유전자 개수나 생화학의 복잡성 정도도 비슷하다. 단지 구성하고 있는 원소의 함량과 조성비 그리고 생존 방식이 다를 뿐이다. 기본적으로 식물은 땅 위에서 고착 생활을 하며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어 생존하는 반면,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다른 생물을 먹이로 섭취하며 이동하며 살아간다. 즉 같은 생명체인 식물에 빚을 지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식물은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존중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식물학의 체계 우리나라 국토의 약 70%는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말이면 천혜의 자연환경을 누리고자 산과 들로 떠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푸른 잎 사이로 탁 트인 시야와 맑은 공기를 마주할 때면 세상의 모든 시름이 내려가는 듯하다. 그 와중에도 이름과 특징을 잘 알고 있는 나무와 꽃, 야생초를 만나면 반가움은 곱절이 된다. 태초에 이름을 갖고 태어난 듯 우리에겐 익숙하고 당연한 이름들이다. 식물을 크게 종, 속, 과 등으로 세분하고 명명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먼 옛날에는 식물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졌을 뿐, 지금과 같은 분류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때가 되면 사과, 복숭아, 포도 등의 열매를 수확하면서도 이를 올림포스 산에서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철학, 물리학, 동물학, 생물학 등이 발달하며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한 연구도 시작됐다.
식물학의 기초를 마련해 오늘날 ‘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오프라스투스(Theophrastus)는 최초로 식물의 이름을 짓고 구분 짓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기원전 371년에 태어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제자로 단순히 식물의 이름을 짓고 나열하기보다는 ‘우리 주변에는 어떤 식물이 자라고 있는가?’ ‘그 식물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식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등 철학적 물음을 토대로 자연계에 숨어 있는 질서를 찾아내고자 했다. 그가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 천문학, 신학 등이 아닌 생물을 연구한다며 주변 학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농부, 목수, 의사, 약재상 등 직업적으로 식물과 밀접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식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당시 현미경이나 확대경이 존재하지 않았던 터라 그는 육안으로 구분되는 것만 묘사하여 이름을 지었다.
씨앗을 둘러싼 전쟁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 그래도 우리는 끝없는 걱정거리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 것이며,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지속적인 풍요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지. 이는 우리의 생명과도 밀접하게 얽힌 문제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그리고 간과해서도 안 될 문제다. 인류 최대의 발명, 농사. 우리는 농부들의 땀으로 삶을 이어왔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농부들과 농사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종자전쟁이다. 종자를 둘러싼 소유권으로 어떤 이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고 있는 한편, 다른 편에서는 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결말을 맞고 있다.
씨앗의 독점 씨앗은 나고 자란 지역의 기후와 문화, 역사를 품고 있다. 농부들은 씨앗으로 농사를 지어 식량을 만들고 거기서 난 또 다른 씨앗으로 이듬해 다시 농사를 지어왔다. 이처럼 씨앗은 순환 작용을 통해 인류의 생명을 지켜왔다. 미국 농무부가 운영하는 대두유전자원보존소에는 미국 대두 산업의 뿌리가 되는 콩의 종자 2만여 종을 보관하고 있다. 현재 재배되는 미국 대두의 90%가 35가지의 품종에서 유래한 것이고 이 중 6개가 한국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이 6개의 한국 대두 품종은 미국 대두 산업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했다. 유전자원 보존소에서 보관 중인 한국의 콩은 약 4,000여 점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품종도 있다. 1906년부터 1917년 미국 농무부의 의뢰를 받은 프랭크 메이어는 조선, 중국, 러시아 등에서 다양한 식물을 채집했으며 1929년에서 1932년 사이 도셋과 모스가 이끈 콩 원정대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등지에서 재배 콩과 야생 콩 종자를 대량으로 수집해갔다. 콩의 원산지인 한반도는 당시 아주 다양한 유전자원의 보고였다. 미국이 이처럼 유용한 식물을 도입하는 일에 열성적이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식량자원의 보고를 위함이었다. 수집된 종자들은 미국 농민들에게 분배되어 재배하도록 장려되었다. 이렇게 수집된 식물자원만 약 65만 종, 현재 미국은 세계 1위의 식물 자원 보유국이다. 이후 종자들은 민간기업에 연구용으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몬산토의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종자들 역시 이러한 절차로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