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April, 2018
화 좀 내지 맙시다
Editor. 김선주
가끔 아무 생각 안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며
수시로 정신을 놓아버리는 일이 수십 번.
딱 이것만 먹어야지 하고 이것, 저것, 그것까지 다 먹는 일이 수백 번.
매일 하루 세 시간씩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참 별의별 사람과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 ‘사람’과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출근 시간의 인구 고밀도는 기본이고, 노인석에 모여 앉아 큰소리로 웃으며 이야기하는 무개념 주취자들, 나름대로 눈치 있게(?) 가방에서 주섬주섬 김밥을 하나씩 꺼내 먹는 아주머니, 심지어 스피커 모드로 통화하는 분까지. (제가 왜 궁금하지도 않은 그쪽 통화내용을 듣고 있어야 하나요….) 뭐 이건 아주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크고 자잘하게 신경을 긁는 일이야 꼭 지하철이 아니더라도 태반이다.
사실 사회적으로 규정된 도리와 매너에서 어긋난 데서 오는 분노 외에도 저마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상황이나 태도에 대한 나름의 규범이 있어서, 남들은 괜찮은데 괜히 나만 짜증 나는 순간도 있다. 이럴 땐 참 뭐라 말하기도 어렵고, 내가 유난히 예민한 건가 싶어진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화가 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렇게 매일 조금씩 누적된 짜증 마일리지를 써버리고자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부터 인상적인 『시발점』은 카피라이터 딥박이 자신이 화가 났던 순간들을 ‘25일’의 일러스트와 함께 글로 툭 펼쳐 놓은 화에 대한 기록이다. 화를 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화가 나는 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가 어떤 순간에 예민해지고 화가 나는지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들이 모여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Angry Point를 Strarting Point로 삼아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카피라이터다운 예리하고 재치 있는 표현과 간결한 문장으로 적어 내려간 ‘시발점’들을 읽고 있노라면 분명 화가 나는 일들임에도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짜증과 분노의 감정을 꺼내놓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대신 화를 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일상의 작은 일들에서조차 화가 났던 사람의 뼈 있는 한마디가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렇게 누군가의 앵그리 포인트는 또 다른 누군가의 스타팅 포인트가 되어준다. 나에게 누적됐던 짜증 마일리지를 얼마큼은 소진할 수 있었듯 말이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맞아 맞아 나도 그런데’ 하면서 읽다 보면 새삼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럴 땐 그냥 ‘뭐 아무렴 어때, 난 이런 사람인걸’ 하고 당당해져 버리는 거다.
혐오사회니 분노사회니 하는 요즘의 분위기는 차치하고서라도 원래 사람은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이 정상이다. 대단한 일에만 분노하느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크고 대단한 일보다 당장 눈앞의 사소한 일로 감정을 소비하는 게 인간 아니던가. 꼭 누군가에게 화를 내지 않더라도 속된 말로 ‘빡’이 치는 순간이 어디 한두 번이랴. 세상이 이렇게 화 투성인데,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화가 나는 자신을 자책 말고 인정해주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