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 살아가는 세상이다. 자신의 개성에 맞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모양내고, 입을 옷과 신발을 정한다. 가방 속 작은 소품 하나까지 자신의 취향이 묻어있지 않은 물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집 안에서 사용하는 용품들과 장식품에도 취향이 서려 있다. 그런데 막상 보호막 그 자체로의 집이라는 공간은 어떠한가? 공간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이란 실로 대단한 것을, 어째서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는 취향을 내세우면서 정작 자신의 취향이 가장 또렷하게 묻어나야 할 집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주는 대로, 남들과 하나 다를 바 없이, 게다가 비싼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살아가는 것일까? ‘고층 아파트’ ‘넓은 평수’로 대변되는 집에 관한 환상은 오늘날 한국인 대다수가 가진 일종의 막강한 신드롬이 되었다.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 ‘비메오 Vimeo’의 공동 창업자인 자크 클라인Zach Klein이 기획한 책 『캐빈 폰 인사이드(Cabin Porn Inside)』는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돌아보고 보살피게 만드는 힘을 안겨준다.
“건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은 바람은 아이를 바라는 마음 만큼이나 근본적인 본능이다. 간단히 말해 자연의 일부를 만들고 싶은 바람, 산과 시내, 떨어지는 눈과 비,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우리가 만든 무언가로, 즉 자연의 일부이자 우리를 둘러 싼 환경에 속한 무언가로 완성하고 싶은 바람이다.”
_크리스토퍼 알렉산더 『영원의 건축』 중
저자 자크 클라인은 전 세계의 오두막 사례를 한 데 모았다. 12년 전, 자신과 가족이 살아갈 작은 통나무집을 짓기 위해 블로그에 통나무집 이야기를 모아두었던 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돈을 모으고 땅을 매입하는 과정, 땅 사진과 밑그림 작업, 집의 골조를 세우며 하나씩 완성해 가는 과정, 그 속에서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실제로 사람들이 손수 지은 집에 관한 자료는 자크 클라인이 뉴욕주 북부 숲속에 직접 집을 짓는 데에 많은 영감이 되었다. 그의 작고 소박한 오두막이 위치한 장소는 ‘비버 브룩’이라는 친자연적 공동체가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멋진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는 데다 언제든지 풍덩 뛰어들 수 있는 개울물도 있다. 어디까지가 숲이고 어디까지가 나무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친화적인 이곳에서 영감을 얻은 클라인은 2015년, 전 세계의 다양한 통나무집을 소개하는 책 『캐빈폰』을 출간했다. 캐빈 폰은 오두막을 뜻하는 캐빈cabin과 포르노pornography의 합성어로, 클라인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오두막집 짓기 정보 공유 사이트의 이름이다. 이 온라인 공동체가 공유하는 2만 개가 넘는 사례 중 가장 사랑받는 집들을 골라 엮은 이 책은 전 세계 7개국 30만 부의 판매를 기록하면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에게 자기만의 집을 만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따뜻하고 소박한, 그리고 효율적인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나무집의 매력을 전하는 이 책은 누구든지 원한다면 일률적인 구조의 집에서 벗어나 자신만을 위한 근사한 오두막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선사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손수 자신의 집을 지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재료비를 아끼기 위해 건축 현장이나 유리 회사의 폐자재를 모아 집을 짓고, 강물에 떠다니는 물건들을 모아
판잣집 배를 만들거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을 모아 집을 지었다. 홀로, 혹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기거하기 위해 만든 이 집들의 공통점은 모두 자연과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빛과 바람, 숲과 강, 해안가의 위치를 고려해 문과 창문을 내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에너지원을 고려하기도 한다. 그렇게 천천히, 공들여 만들어진 자신만의 공간에서 그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흔히들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과 등지고 자신만의 세계로만 빠져든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 나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의 삶에 매몰되어 가는 사람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저마다의 취향과 가치관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이들이 머무는 공간의 창틀 모양이나 문이 난 방향, 가구와 소품 하나하나에서 까지 그 태도가 짙게 묻어난다. 또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면서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자 매 순간 자신의 삶을 물질주의로부터 최대한 멀리 둔다.
앞서 출간된 책이 오두막의 겉모양을 소개하는 데 치중했다면, 이번 책 『캐빈 폰 인사이드(Cabin Porn Inside)』에서는 자연 속에 지은 세계 곳곳의 집 내부와 인테리어를 자세히 다룬
다. 이 책 역시 집을 짓는 방법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모두는 그 어떤 강
요나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맹목적으로 트렌드를 쫓기보다 온전한 자신의 이야기를 꾸리는 삶을 직접 지은 오두막을 통해 완성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너무도 당연시되는 획일적인 집의 구조와 그 안에서의 삶,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일률적인 사회적 시스템으로부터 자신을 과감하게 분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허상이 아닌 실질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