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une, 2016
소통불가한 객체와의 조우
Editor. 지은경
프린스 사망 소식에 슬퍼한 한 사람이다.
나이가 드니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점점 좋아하던 스타에게로, 주변인들에게로, 가족에게로 옮겨오고,
결국 결말은 자신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고 생각하니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가 많다.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나는 언제부터 걷기 시작했고, 언제부터 ‘나’라는 자아를 인식했을까?” “동물의 눈으로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성인)를 마주한 그들은(우리가 아닌, 아기나 동물) 어떤 감정을 가질까?” 살면서 한 번쯤은 이러한 의문들을 마음속에 품어볼 것이다. 최근 읽은 두 권의 책, 폴 오스터의 『내면의 탐구』와 김훈의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는 그런 시시콜콜한 내 의문에 어떤 시선을 가질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고, 순수하고도 어린 시선으로 서술한 글의 느낌이 매우 신선한 기쁨으로 다가왔다.
폴 오스터와의 화해
얼마 전 책방 구경을 하다 집어 든 『내면보고서』는 폴 오스터에 대한 내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폴 오스터의 잘 읽히지 않던 다른 책들에서도 그의 독창성과 상상력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면보고서』는 폴 오스터 자신의 회고록으로 어린 시절 기억들을 느릿느릿 복원해가며 서술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경험들 속에서 나는 한 인간, 한 남자, 그리고 한 작가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를 직감할 수 있었고 어린 시절 그 아스라한 느낌들을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섬세하지만 늘어짐 없이 이야기의 에센스를 정확하게 뽑아낸 간결하고 절대 기름지지 않은 문체가 매우 시원하게 다가왔다. 『내면보고서』를 통해 사람들은 작가 폴 오스터의 과거, 그리고 매우 은밀한 내면의 생각들과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정작 내가 책에서 만났던 것은 폴 오스터의 경험을 빌려 찾아온 나의 내면세계였으며 나의 과거였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어린 시절, 성장기의 작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지금의 시간을 얼마나 크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토록 재미없고 끝내기 힘들던, 내게는 숙제만 같았던 작가 폴 오스터의 책들과 나는 그렇게 화해를 시작했다. 그동안 사놓고 몇 장 읽다 던져버렸던 오스터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의 내면은 얇은 비닐 껍데기가 한 겹 씌워진 것 같았던 나의 무딘 감정 상태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독서도 역시 타이밍과 감정의 상태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기 마련인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존재의 고귀함
진돗개 보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인간이 느끼는 세상보다 찬란하며 서글프다. 어쩌다 태어나 보니 보리는 특별할 것 없는 시골의 개다. 보리는 가장 소중한 몸의 일부인 발바닥의 붙은 굳은살을 핥는다. 개를 향한 인간의 애정이 아무리 크다 한들 개가 인간에게 품는 애정만 할까. 보리는 서운해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오는 현실을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온 애정과 호기심을 다해. 작가 김훈의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문체와 미세한 감정의 표현들이 어찌나 설득력이 있는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착한 개 한 마리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돗개 보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 그 덧없음과 매정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마음을 다하는 불쌍한 개들, 더욱 슬픈 것은 보리 자신은 자신의 운명을 기구하거나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는 어디까지나 현재 진행형의 생명이니까. 현재가 가장 중요한 놈이니까. 이 소설은 새삼스레 개의 충성심이나 사랑을 확인하라는 식의 종용을 목적으로 두고 있지는 않다. 그 안에 깔려 있는 생명에 대한 의미와 인간의 부조리함, 매정함, 그리고 나약함을 보게 된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온 감각을 다해 살아가는 보리. 어쩌면 삶의 진정한 의미는 보리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오늘도 보리는 인간을 바라보며 자신을 위로하듯 발바닥에 붙은 굳은살을 혀로 어루만진다. 소박한 문장을 통해 고달픈 보리와 개들의 삶을 바라보자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리고 이렇게도 야속한 인간의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듯 어루만지는 보리의 독백을 듣자니 인간에 대한 경멸보다는 연민을 품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