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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아침

에디터. 지은경 자료제공. © Gestalten 사진. Photo © Conor Lowndes / @our_venturing_van / 『The Getaways』, Gestalten 2022

상상해보자.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젖혔을 때 창밖으로 펼쳐지는 매일 다른 풍경을. 거대한 알프스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면 어떨까? 사하라 사막의 광활한 모래 언덕에서 평온한 아침을 맞이한다면? 어떤 아침에는 지중해에 몸을 담글 수 있다면?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작고 아늑한 안식처로 돌아가 또 다른 아침을 기대하며 새로운 길을 떠난다면?『The Getaways』는 바퀴가 달린 4륜 구동 주택에 대한 개요 서로, 원하는 장소를 찾아 이동하고 그곳에 정차할 수 있는 존재로서 집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한적한 산길과 맑은 바닷길을 따라가며 창의력 넘치는 나만의 집에서 맞이하는 색다른 하루를 만나보자.
10여 년 전, 지금은 헤어진 옛 애인을 따라 6개월간 모험을 떠난 적이 있다. 사진작가였던 그는 매년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스페인으로 떠나 밴에서 생활하며 피레네산맥에 흩어져 있는 에르미타Ermita, 13세기 이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들을 찾아 다니며 핀홀 카메라(바늘구멍 사진기로 가장 원시적 모양의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다. 에르미타는 세상과 동떨어진 작은 기도 공간, 우리말로 하면 암자 같은 성격의 외딴 집이다. 6년째 되던 해에 프로젝트를 마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는, 이때가 아니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따라 나섰다. 그는 “빈자의 집을 위한 빈자의 카메라”라며 여행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 경고했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빠진 나머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 운전 끝에 도착한 어느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차를 세웠다. 밖은 어느새 캄캄해져 있었다. 좁은 공간에서 파스타를 삶고 채소와 콩을 볶고 작은 유리잔에 와인을 따랐다. 피곤하고 배고픈 나머지 별다른 대화 없이 허기만을 달래고, 주전자에 물을 끓여 베이킹소다를 넣고 설거지를 한 후 마른 행주로 닦아 박스 안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간이 식탁은 금세 사라지고 벽처럼 세워져 있던 침대가 내려와 있었다. 좁은 매트리스를 최대한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보람도 없이 막 들어간 이불 속은 차갑기만 했다. 나는 낯선 장소와 추위를 이겨보려 눈을 질끈 감았다. 완벽한 적막이 감도는 순간 애인이 말했다.
“우리가 머무는 호텔은 별 하나짜리도, 두 개짜리도 아니야.” “그러면 여기가 무슨 별 다섯 개라도 된다는 소리야?” “아니, 별 백만 개짜리야.” “뭐라는 거야?” 그 순간 자동차 천장의 작은 창 사이로 쏟아질 것 같이 많은 별들이 보였다. 어찌나 많았는지 두 눈으로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네! 밀리언 스타 호텔이네.”
누추한 매트리스 한 장이 전부인 방 한 칸은 순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로 둔갑했다. 날이 새고 아침이 찾아와도 그 황홀함은 여전했다. 기지개를 켜며 차 문을 열자 새벽안개를 머금은 화려한 피레네산맥이 눈앞에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6개월 동안 피 터지게 싸우고 열심히 운전을 하고, 위험한 상황도 만나며, 끝없이 사진을 찍어 댔다. 지금 생각하면 내 생애 가장 멋진 모험이었다. 너무도 고된 여행이었음에도 호사스러운 아침을 매일 맞이했던 6개월이었으니까.
드라마틱한 풍경을 자랑하는 오프로드 안내서 『The Getaways』를 손에 들었을 때 10년도 더 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험한 산길을 오르고, 길고 좁은 협곡을 건너는 밴 사진들이 하루하루를 꽉 차게 보내던 당시 여행의 장면들을 눈 앞에 소환한 것이다. 들에서 꺾어 온 타임과 로즈마리 다발이 승합차 한 켠에서 마르며 풍기던 향기, 너덜너덜해진 지도와 보온병에 담아두었던 레몬차, 심지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빠른 리듬의 스페인 플라멩코 노래까지. 책에 등장하는 여행자들은 저마다 밴 라이프를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각자의 성격에 맞게 편리함과 불편함의 어느 중간 선상에서 개성 있는 삶의 방식이 펼쳐진다. 또한 전문적인 캠핑카가 아닌 승합차를 멋진 캠핑카로 개조하는 방법과 그에 맞는 유용하고 다양한 도구들을 함께 소개한다.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면 이제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아침을 맞이할 차례. 구름 사이로 높은 봉우리만 드러낸 절벽을 바라보며 끓이는 모닝 커피가, 아침 햇살이 찬란하게 떠오르는 동쪽 바다의 파도 소리 알람이, 깊은 숲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아침 향기가, 거대한 대지가 깨어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는 감격의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강변 뷰가 보이는 아파트보다, 오션뷰를 가진 호화로운 리조트보다 더 호사스러운 풍경이 오롯이 내 앞에서, 나와 독대를 하고 있는데 그 어떤 사치가 부러울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처럼, 아무도 침범하지 않은 새벽의 첫 공기가 내 몸 속으로 스며든다. 매일 기나긴 길을 달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만나는 일은 멋진 모험이다. 도시로부터, 현실로부터 멀어진 밴에서의 삶. 매일 같은 일과 대신 기나긴 침묵과 고요가 흐르기도 하고, 어느 순간 강한 바람소리가 주변을 감싸기도 한다. 오로지 자연과 나의 이야기다.
수없이 주어지는 변수 속에서 떠오른 단 하나의 깨달음이 있다면, 자연은 위대하고 그 앞에 선 나는 한없이 작다는 사실이었다. 수백 가지의 풍경을 지나며 되도록 오랫동안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뺨에 와닿는 바람의 감촉에도 집중했다. 이토록 작은 나와 위대한 자연, 때로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불현듯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삶이 보다 명확하게 보였다. 그것은 바로 생존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삶을 향한 뜨거운 애정이 그리워질 때면 또다시 길을 나서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아침을 맞이하는 곳으로.
March23_Inside-Chaeg_01_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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