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넓은 대륙에 분포한 인류는 각자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수호해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전통을 인정하고 그 고유성을 지키려 노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스스로 그 경계를 지운다. 한때는 획일적이고 명료한 기준에 따라 무언가를 분류하고 구분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면,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다양함과 어우러짐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에 비로소 찬사를 보내기 시작한 듯하다. 중남미 대륙은 그야말로 다양성의 집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인류의 얼굴을 한 곳으로 모아 놓은 듯한 다채로움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침략과 약탈, 이민의 역사가 있었지만, 그러한 아픔을 딛어낸 이곳에서는 고유한 내부의 것과 외부의 것이 충돌과 조화를 반복하며 이룩한 다양한 풍경이 자리 잡았다. 중남미를 촬영한 사진 속에서 우리는 이국적인 피부색의 사람들, 매우 낯선 표정들을 만난다. 그러나 저마다의 딛고 이겨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헤아리는 미시적 렌즈를 덧대는 순간, 그 안에서는 과거의 시선으로는 발견하기 어렵던 우리 자신의 표정 또한 마주하게 된다. 분열하고, 혼합되고, 조화를 이루고, 저마다의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듯이.
스페인어로 혼혈을 뜻하는 ‘메스티소’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이를 말한다. 16세기 신대륙에 발을 디딘 스페인 사람들은 재산을 넉넉히 모은 뒤 스페인으로 돌아가서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원주민인 인디오 여인들은 그들의 새로운 삶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메스티소 아이들에게도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 아이들은 어머니 손에서 전통적 인디오 방식으로 교육되었다. 그럼에도 메스티소의 수는 폭발적이었고, 현재도 멕시코 인구의 55%를 차지하고 있다. 찬란한 문명을 일구던 아즈텍인들은 메스티소가 침략으로 탄생한 인종이자 굴욕의 역사라며 수치스러워했고 그 이야기는 심지어 중남미의 카니발 행사에서 재현되기도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의 만남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16세기 유럽의 지배하에 아프리카에는 기독교 사상이 퍼져나갔고, 그곳에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다. 이때부터 이들의 생활 방식과 종교관은 격동의 세월을 맞이한다. 이들이 가진 아픈 과거는 세대를 거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남미 사람들은 아픈 역사를 인정하면서 그 나름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디에고 리베라를 필두로 한 멕시코 벽화 운동은 1910년 멕시코 혁명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라틴아메리카의 백인 지배자들로부터 인디오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이들의 생활 방식을 보존·부흥시켜야 한다는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리베라는 다른 사회주의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미술이 직접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기능을 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가치관은 멕시코를 넘어 중남미 전역으로 퍼졌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핵을 형성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또한 중남미인들이 스스로 멸시한 정체성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탄생하게 된 중요한 사조이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그들의 문화와 모습이 아름다운 까닭은 혼란스러움 가운데서 예술로의 승화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남미에서 세계인의 얼굴을 발견한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아시아인의 얼굴까지 찾을 수 있다. 수많은 교차와 아픈 역사로 만들어진 얼굴들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들이 열어놓은 새로운 문, 그리고 다양한 얼굴들에서 순수하게 피어난 아름다움을 느낀다.
전 세계의 사람들은 외형과 종류가 다양한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 비해 외형상의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다. 추운 기후에 사는 사람들이라 해도 더운 기후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털이 더 많지 않으며, 개나 물고기들이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파랑, 빨강, 노랑 등 강렬한 빛깔이 전혀 없이 진하고 연한 정도의 차이만 나타날 뿐이다. 인간의 남녀 간 차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의 경우보다 더 적다. 예컨대 비비 원숭이의 경우 수컷과 암컷은 몸집 크기가 몇 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인간이 신체적으로 그토록 뚜렷한 동질성을 보이기에 문화와 언어, 행동들이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게 느껴진다. 하지만 문화는 신체적 차이에 비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 보인다.
_잭 웨더포드, 『야만과 문명』 중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Jack Weatherford가 말하듯,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외형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에 대한 관점은 문화·교육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낸 관습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완벽한 외적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고, 수 세기에 걸쳐 완벽한 아름다움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름답게 보이려는 욕망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특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면서 부작용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뷰티·패션 산업은 사회가 설정한 이상형의 틀을 깨고 개개인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추세다. 그로 인해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미의 획일적인 기준이 더 이상 예전처럼 통하지 않게 되자, 그 사이로 다양성이 파고들었다. 한 예로 할리마 아덴Halima Arden은 하이 패션계의 중심 도시인 파리, 뉴욕, 밀라노, 런던의 패션 위크의 메이저 브랜드에서 최초로 히잡을 두른 모델이다. 중동 분쟁 지역에서 나고 자란 소녀가 패션계의 최전선에서 톱모델로 활동하고, 그의 활약을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며, 이러한 현상이 무슬림 여성에 대한 인식개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긴다.
신앙과 아메리카 대륙의 토속신앙이 합쳐진 것으로, 당시 유럽인들은 화려한 색상의 새 깃털에 매료되어 사치스러움을 강조하는 모든 곳에 깃털 장식을 달았다. 프랑스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를 비롯한 현대의 수많은 의상 디자이너들은 전 세계의 고유의상과 색상을 현대 의복과 접목시켜 새로운 유행을 창출하기도 했는데, 1997년 고티에 패션쇼에 섰던 앵무새 깃털로 만든 볼레로 의상은 남미의 깃털 장식 문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 줄루족의 구슬 장식은 처음에는 동물의 뼈나 타조알을 엮은 것에서 출발했으나, 유럽인들이 가져간 유리와 플라스틱 구슬들이 점차 그들의 장식에 사용되었다. 그들이 의상에 즐겨 쓰는 ‘더치왁스Dutch Wax’는 네덜란드 상인들이 만든 원단이다. 본래 타깃은 인도네시아였으나 잘 팔리지 않자 상인들은 아프리카로 향했고, 이후 아프리카인들의 열렬한 환호와 사랑을 받으며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제 더치왁스 원단은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인류의 오랜 역사 동안, 사람과 문화가 섞이고 섞일 때 더 많은 문화와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어쩌면 인류가 가진 이러한 다양성의 본성이야말로 우리의 문화 예술, 그리고 패션 산업을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는 가장멀게 느껴지는 곳 중 하나이자, 복잡한 역사 끝에 전 세계의 다채로운 면면들을 함축하고 있는 중남미 대륙을 들여다보는 것은 다가올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