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SF, 그것도 여성이 쓴 SF가 주목받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가 아닌 언젠가의 어딘가를 상상하는 힘. 가장 비현실적인 세상을 그림으로써 가장 현실적인 통찰을 하는 힘.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은 SF, 더 나아가 가장 사랑받은 소설을 꼽는다면 단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일 것이다. 우리 SF의 우아한 계보를 이어줄 김초엽 작가를 만나 새로운 일상과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Q. 요새는 어떻게 지내세요? A. 얼마 전에 레지던시에 입주해서, 글을 쓰려는 마음가짐을 좀 새롭게 다지고 있어요.
Q. 아, 작가 레지던시요.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A. 채널이 커지면서 초반 영상에서 했던 이야기가 신경 쓰이기도 했어요. 혹시라도 기분이 나쁘시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고요. 작가님들 만날 기회도 많아지다 보니 이제는 한 마디 한 마디 더 저는 레지던시에 들어가는 걸 되게 좋아해요. 한 공간에 너무 오래 있으면 관성이 생겨서 출근을 해도 작업을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 두 달 정도마다 작업하는 공간을 옮겨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어요. 제가 원래는 엄청 야행성이라 보통 새벽 5~6시까지 글을 쓰고 낮에는 조금 쉬는 게 생활 패턴인데, 레지던시에서는 달라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생활을 적어도 한 달 정도는 합니다. (웃음)
Q.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패키지, 너무 예뻐요. 작가님 의견이 반영된 걸까요? A. 웬만큼 예쁘지 않으면 재고가 쌓일까 걱정했는데, 예쁘게 잘 나와서 좋아요. 제 의견이 반영된 바는 전혀 없어요. 제가 디자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보니 특별히 코멘트 드릴 것도 없더라고요. 디자이너분이 워낙 잘 해주셔서, 시안들도 정말 다 예뻤어요.
Q. 화학을 전공하셨고, 소설도 과학소설을 쓰시죠. 언제부터 과학을 좋아하셨어요? A. 이건 제가 정확한 시기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과학 시간에 화학의 원리에 대해 배우면서 주기율표, 원소, 원자 같은 게 등장해요. 그전까지는 과학에 큰 흥미가 없었가, 화학의 원리를 배우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원리를 파악한 느낌? 그걸 계기로 학교 도서관에서 과학에 대한 책을 모조리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이과에 가서 과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뚜렷하게 생각을 하게 됐죠. 과학고를 준비하기에는 좀 늦은 시기였지만 그래도 과학고에 갈 수 있을 정도의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Q. 화학의 어떤 면에서 매력을 느끼셨어요? A. 주기율표를 보면 규칙이 있잖아요. 그 규칙이 되게 오묘해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할 때 불규칙하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주기율표를 보면 전자가 하나둘 추가될 때마다 상호작용을 하면서 패턴이 바뀌고, 결합하는 패턴도 굉장히 규칙적이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히 불규칙한게 아니라,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와 규칙들이 있고, 그걸 잘 이해하면 그 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들을 쌓아올릴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Q.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A.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소설이나 글쓰기에 관심은 계속 많았는데, 사실 소설을 잘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보통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짧은 소설 정도는 한 번씩 써보잖아요. 근데 제가 짧은 다른 글을 썼을 때랑 소설을 썼을 때 읽는 분들의 반응이 다른 거예요. 에세이나 동시를 쓰면 잘 썼다고 칭찬해 주는데, 소설은 반응이 영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스토리텔링에 별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졸업할 즈음에 작법서들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저자가 쓴 말에 공감이 되는 거예요. 재능이 있는 사람만 소설을 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설 쓰기의 법칙들을 배우고 나니 어떻게든 글이 써지더라고요. 엄청난 걸작을 쓰지 못하더라도 괜찮은 글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반성했어요. 소설이라는 게 엄청난 사람들만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충분한 연습을 통해 쓸 수 있는 건데 내가 너무 재능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그 이후에 습작을 시작했어요. 그 즈음에 다니던 학교에서 소설 공모전이 열렸고, 한국과학문학상도 그때쯤 1회를 개최했어요. 타이밍이 좋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