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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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1

오늘의 미술 사용법

글.김민섭

작가, 북크루 대표. 책을 쓰고,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림의 힘』
김선현 지음
8.0

나는 단행본 작업이 끝날 때마다 작은 의식을 치른다.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 둔 1,000 피스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를 완성하는 데 한 달씩 걸리곤 했지만 이제는 3일이면 다 맞출 만큼 잘하게 되었다. 다 끝내면 큰 성취감이 찾아온다. 완성된 퍼즐에 접착제를 펴서 바르고 그것이 다 굳기를 기다렸다가 맞춤 액자에 넣어 잘 보이는 곳에 건다. 그리고 이 퍼즐들은 모두 한 작가의 그림이다. 나는 샤갈의 작품을 좋아한다. 샤갈을 좋아하게 된 건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한다며 나에게 그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부터다. 훗날 그 사람과 멀어지고 나서도 샤갈은 남았다. 인터넷으로 작품을 찾아보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한동안 그것으로 해 두기도 했다. 어쩐지 샤갈 작품에 나타나는 남자의 모습이 나와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슬픈 표정, 슬픈 눈, 누군가를 껴안고 있는, 그리고 도시를 날고 있는 모습들이 나에게 공감을 주었다. 왠지, 그 슬픔에 빨려 들어가 더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태어나서 처음 나의 의지로 미술관을 찾은 것이 몇 년 전이었다. 샤갈 특별전이 있다고 했다. 혼자 가기에는 왠지 민망해서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내가 표를 살 테니 같이 가달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샤갈을 좋아한다면서 흔쾌히 응했고 자신이 도슨트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나는 무척 행복했다. 샤갈이 왜 그러한 그림을 그렸는지 알게 되었고, 알지 못했던 더욱 슬픈 그림과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미술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도슨트 같은 역할을 해주는 책을 소개한다. 『그림의 힘』은 한 번쯤 보았거나 혹은 한번쯤 봐야 할 만한 그림들을 통해 일, 관계, 돈, 시간,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한다. 샤갈의 작품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나는 이 책에서 또 한 명의 화가를 처음 만났다. 그는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다.
미술치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난 저자는 “상담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림은 무조건 예쁘게’를 표방한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며 특히 즐거워하고 웃음을 되찾기도 하고 친밀한 관계에 대한 그리움을 채운”다고 말한다. 나의 처지나 감정이 이전과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는데, 나 예쁜 거 좋아하는 사람이었네’ 하는 마음이 되어 조용히 웃었다. 저자에 따르면 르누아르는 알록달록한 옷이나 구체적인 형체를 배제하고 주로 행복한 인물의 표정을 강조한다고 한다.
마치 작가가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하고 말하고 있는 듯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샤갈이나 르누아르를 발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어느 날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어느 날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를, 어느 날은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를 발견하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르누아르 그림 속 인물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행복해진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