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 이달의 화제

새로운 가족이 온다

에디터 : 김수미, 전지윤, 윤형중

오랫동안 우리에게 ‘반려’의 대상은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 자리에 새로운 존재들이 들어서고 있다. 네 발의 털북숭이 동물 친구들부터, 말은 커녕 감정 표현조차 하지 않는 초록빛 식물, 혹은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생판 남이 바로 그 대상이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얽매이기보다는 독립적이며 자유롭고 싶어 하는 현대인이 비인간 생명체에게 시간과 비용과 애정을 쏟고, 가족이 아닌 이와 주거 공간을 공유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가족의 시대, 전통적인 가족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등장한 반려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1-기르는 삶, 깃드는 마음
“2만 6천 년 전, 소년과 개가 동굴 속을 걸었다. (…) 소년은 컴컴한 동굴 속으로 깊이 들어가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횃불을 벽에 대고 벅벅 긁었다. 벽에 짙은 그을음을 남겨서 돌아오는 길을 표시하려고 했을 것이다. 나란히 찍힌 이들의 발자국 화석을 따라 탄소 연대 측정법을 실시한 결과, 이 화석이 우리가 동물의 친구였음을 보여 주는 최초의 증거임이 밝혀졌다.”
_재키 콜리스 하비, 『살며 사랑하며 기르며』 중

1994년 프랑스 남쪽 아르데슈Ardèche 강 부근의 석회암 협곡에서 발견된 이 동굴은,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 ‘쇼베Chauvet 동굴’로 불린다. 『살며 사랑하며 기르며』의 저자 재키 콜리스 하비Jacky Colliss Harvey에 따르면 구석기 시대에 새겨진 두 생명체의 나란한 발자국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바를 시사한다. 첫째, 소년은 개와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걸었다. 둘째, 소년은 개를 믿었고 친근함을 느꼈다. 셋째, 소년은 개를 벗 삼아 컴컴한 동굴을 걸었다. 지금이야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삶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태초에 인간과 동물은 생존을 위해 서로 경계했을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 부터, 어떻게 달라진 걸까?

최초로 인간과 친구가 된 동물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개’로 알려져 있다. 개의 정식 학명 ‘카니스 루푸스 파밀리아리스Canis lupus familiaris’는 늑대의 학명인 ‘카니스 루푸스Canis lupus’에 가족 같고 친숙하다는 뜻의 라틴어 ‘파밀리아스Familias’가 더해진 것이다. 그 우정의 시작에 관해 여러 가설이 제기되었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인간의 정착지에 어느 날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주장이다. 1950년대 러시아 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Dmitry Belyaev의 주장에 따르면, 야생 늑대 중에서 사람에게 공격성을 보이지 않고 반갑게 대하는 자질을 가장 뚜렷이 보인 몇몇이 인류의 정착지 주변을 맴돌았고, 위협적인 포식자가 접근하면 짖어서 인간에게 알려주고 그 보답으로 먹이를 제공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한다.

2-은밀하고 위대한 녹색 반려
나는 지금 내가 사는 곳에도 뒤뜰이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가볍게 산책할 숲도 있으면 좋겠다. 동네 화원에 들렀다가 뉴욕주 북부에서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을 찾고 있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 이 말에 젊은 여자 점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의 로망 아니겠어요?’ 맞는 말이다. 자연 속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 드넓은 공간과 푸르른 자연, 거기에 딸려오는 축복 같은 고요함에 대한 갈망은 텃밭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이는 활동들에 의해 뒤로 밀려났다.”
_서머 레인 오크스, 『도시 속의 월든』 중

위 책의 저자 서머 레인 오크스Summer Rayne Oakes는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며 녹지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된 일부 지역에서 “자연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야외에 나갔을 때 거리낌이 들고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일명 ‘생명 공포증’을 앓는 아이들의 사례에 주목했다. 게다가 이 증상을 호소하는 이들 중일부는 손에 흙이 닿는 것조차 두려워했다고 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월든』에서 “자연은(해와 바람과비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준다. (…) 내가 어찌 대지와 교제를 하지 않겠는가? 나 자신이 그 일부분으로 잎사귀이며 식물의 부식토가 아니던가!”라 했다. 무릇 인간이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며,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는 생물이다. 그런 인간이 자연을 생경하게 여기고 공포의 대상으로 느끼는 오늘날의 세태는 우려를 넘어 두려움까지 느껴지게 한다.

자연과의 연결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은 도시의 작은 공간이나 골목을 개조해 커뮤니티 가든이나 소규모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건이 되지 않으면 가까운 공원으로 향해 잠시나마 야생을 관찰할 시간을 갖고 산책을 한다. 이와 같은 잠깐의 활동만으로도 교감신경계 활동과 혈압이 억제되어 우울감과 무가치감을 낮출 수 있고 불안감, 걱정, 긴장감도 줄어든다는 과학적· 임상적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어떤 장소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생기를 일으키는” 식물의 기적적인 능력 덕분이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1천 그루가 넘는 550종의 식물과 함께 사는 오크스는 식물이 성장하고 대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생명력이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실내에서 반려식물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두고 “은유적, 정신적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길과 다름없다”고 비유한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자연 곁에 있기를 원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을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3-누구에게나 같이 살 권리가 있다
방송인 김구라 씨는 2020년 4월 고정출연 중인 SBS 〈동상이몽〉에서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동거에 대해 “숨기는 게 아니다”라면서 “젊은 분들과 내 나이의 동거는 느낌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 김구라 씨의 동거에 대한 반응이 매우 호의적이었다는 것이다. 〈동상이몽〉은 주로 부부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리얼 예능으로 중장년층이 주 시청층인 지상파 방송이다. 문화적으로 가장 보수적일 법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동거’를 선언했는데, 나머지 출연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잘된 일이다’ ‘축하한다’였다. 우리 사회가 이전과 달리 동거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다.

그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동거에 대해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이미 주변에 동거 가구가 더러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결혼이 사별, 이혼 등으로 끝나도 고령화로 인해 수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환경이 됐다. 동거하면서 혼인하지 않는 중장년층은 빠르게 늘고 있다. 60대 이상 1인 가구는 2000년 71만 가구에서 2020년 214만 가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흔히 ‘1인 가구’ 하면 떠올리는 20, 30대 비혼 1인 가구보다 오히려 더 흔한 것은 혼자 사는 노년층이다.

나이 들수록 혼자 살기는 쉽지 않다. 중장년층이 다음 인연을 찾는 일을 부자연스럽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동성 연인 간의 경우 아예 결혼을 할 수 없고, 이성이라고 해도 선뜻 재혼을 선택하긴 쉽지 않다. 결혼이나 이혼 과정을 한번 겪었다는 개인적 문제 외에도, 법적으로 혼인은 신분관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상속이나, 자녀와의 관계 등에 변동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장년층이 이성이나 동성의 파트너와 함께 지내는 거주 형태가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동거일 것이다. 한국은 동거 가구에 대해 공식적인 통계조사를 하지 않는데다가, 동거에 대한 편견도 남아있어서 동거 가구 통계가 매우 부정확하다. 많은 사례를 접해온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청년기의 철없는 결정이라는 편견과 달리 동거는 중장년층의 현실적인 선택인 경우가 더 많다.

May21_Topic_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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