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6
상투성의 위안
Editor. 유대란
아랫집 아주머니는 말이 많다. 얼굴만 보면 낙엽 좀 쓸어라, 그 월세 내고 저축은 하느냐 등 잔소리를 쏟아낸다. 건물 입구에서 한바탕 잔소리와 넋두리를 듣다가 모기에 여러 방 뜯긴 적도 있었다. 쉼 없는 아주머니의 말을 도중에 끊을 재간은 없었다. 평소 고분고분하지 않은 내가 왜 이 성가신 아주머니 앞에서는 유독 순한 양이 되는 건지 생각해봤다. 세상에서 제일 상투적인 말도 아주머니의 입을 통하면 다르게 들린다. 아주머니가 시무룩한 나를 보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당당하게 내뱉는 ‘흐이그, 원래 남녀 관계가 그래!’ ‘남의 돈 받기가 쉽지 않지?’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야.’ 따위의 말은 무언의 울림을 남긴다. ‘남녀 관계가 그래’는 ‘그러니까 딴 놈 만나도 비슷할 거야. 적당히 만나’라는 울림을, ‘남의 돈 받기가 쉽지 않지’는 ‘나도 그랬어, 우리 집 바깥양반도’ 라는 메아리를. 위로인지 확인 사살일지 모를 이 상투적인 언어들과 그것의 메아리를 되새기며 나는 나의 삶을, 나보다 좀 더 많이산 아주머니의 삶에,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삶에 나란히 놓아본다. 거기서 나의 행복이 남들의 것보다 더 빛나란 법이 없듯 내불행도 특별하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다. 아주머니는 성가신 현자다.
아는 라디오 작가에게 소개할 사연을 뽑는 기준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이야기가 너무 기상천외해도, 너무 평이해도 안 된다고 했다. 기상천외하면 공감하기 어렵고, 평이하면 지루하니까. 그가 내놓은 또 다른 기준은 ‘진실성’이었다. ‘진실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느냐고 되묻자 8년 차 경력의 그는 웃으며 싱거운 대답을 내놨다. “글만 봐도 그 사람이 보여.” 그가 이 책을 봤다면 후한 점수를 줬을 것 같다. 이 책은 방구석에서 느릿느릿 게으름을 피우는 느지막한 오후, 라디오에서 들릴 법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여느 평범한 30대처럼 직장생활을 하던 보통 남자다. 문득 자신이 잘살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장 얼굴에 냅다 사표를 던지고, 훌쩍 오지로 여행을 떠난다거나, 자아실현을 위해 공방을 차린다거나, 개량 한복 같은 것을 입고 유기농 농사를 짓는 이런 극적인 일들은 책 속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아버지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봤던 기억을 되새기고, 서점에서 유독 1권만 없는 현상을 관찰하고, 딱히 필요 없는 만년필을 산 것을 자랑하는, 평범한 일들뿐이다. 그는 이런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에서 삶의 지혜를 상기하고 즐거움을 찾는다. 인생의 획기적 전환을 꾀하는 것이 대세처럼 여겨지는 지금, 평범한 자리에서 가까운 사물과 기억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의 꾸밈 없고, 담백한 시선은 평범해서 특별해진다.
이제 우리는 평범하기가 가장 어려워진 시대에 살게 된 건지도 모른다. 평범하면 주목받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건 가치가 폄하된다. 그래서 특별해지고자 노력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되는 건지 또 그 괴리가 두려워진다. 이런 상념의 순환에 지쳐 있다면 ‘방구석 라디오’를 들어보자. 평범함을 무시할 근거도, 특별함을 추앙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닫고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럽게 굴 수 있다.
레니 크라비츠의 ‘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명곡이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의미의 이 노래 제목은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명언에서 비롯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뜻으로, 사기충전을 위해 쓰이는 문구지만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는 조금 다르게 읽힐 것이다. 끝났지만 완결되지 않은 감정과 거르고 걸러도 남는 감정의 잔여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는 이에게는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이 사랑이다. 저자도 같은 고민을 했고 무엇을 수거하고 폐기했는지 카피라이터 출신다운 쉽고, 짧고, 감각적인 문장들로 기록했다.
책의 ‘수거물’ 파트에서는 사랑을 통해 깨닫게 된 것들을 나열한다. 여기엔 기쁘게 그리고 기꺼이 획득한 사랑에 관한 훈훈한 ‘수거물’도 있지만, 어쩔 도리 없이 알게 된 다소 쓰라린 사랑의 속성들도 있다. 저자는 사랑하는 상대의 예측할 수 없음을 예찬하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다 부서진 부분을 꾸역꾸역 메우는 일이 사랑이라고도 얘기한다. 수거된 것들에 관한 파트인 만큼 사랑에 관한 곱게 걸러진 문구들이 운율이 통통 튀는 시처럼 읽힌다. 반면 ‘폐기물’ 파트는 역시나 구구하다. 아무리 걸러보고 뒤늦게 포장해봐도 도무지 미화할 수 없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취한 밤 울컥한 시간을 넘기고 찾아온 새벽의 허무함, 더는 뜨겁지 않지만, 완전히 식지 못한 미지근한 것들을 처리하지 못해 서성였던 경험이 누군들 없을까. 어디에 털어놓기도 구차하고 자잘한 감정의 찌꺼기들은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힌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을 업고서 다시 사랑을 선택하는 이들은 이런 ‘폐기물’이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일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사랑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는 기대보다 우리가 견고해짐으로써 지난 사랑이나 그로 인한 고통도 간직하고 싶어 하는 성숙함을 배울 여지에 있다. 만약 사랑에 관한 책이 뻔하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느끼는 자신이 얼마나 뻔한 사람이 되었는지 자문해보기를. 돌이켜보면 사랑은 우습게 여길 정도로 그 기회나 경험이 흔하지 않다. 졸업한 학교의 개수에 맞먹을 정도던가. 그리고 기억하자. 사랑은 매번 특별했다는 사실을.
평범한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저 하루 세 끼를 먹고, 따뜻한 방에서 자고,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정도라 해도 유키에의 삶은 거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4컷 만화에 담긴 유키에의 삶은 많이 힘겹다. 그녀는 식당일을 하며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을 이어가지만, 남편 이사오는 경마, 파친코, 마작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건달인 데다가 툭하면 밥상을 엎고 매일같이 아내의 지갑을 턴다. 달동네 신파가 따로 없다. 유키에의 유년시절도 상황은 비슷했다. 무능한 주정뱅이 아버지를 유일한 혈육으로 둔 유키에는 열 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그녀는 쌀이 떨어질 걱정에 악몽을 꾸고, 급식비 미납자로 호명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교실에서 졸도한다. 씩씩해도 좌절감은 찾아온다. 가난이 부끄러운 청소년기에 유키에는 “나는 내가 싫어”라고 되뇌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은행털이를 하고 콩밥 신세가 된 아버지를 뒤로하고 유키에는 고향을 도망치듯 떠나지만, 가난과 불행은 그녀를 또 추월한다.
유키에를 맞고 사는 전근대적 아내의 전형으로 여기며 답답함을 토로하는 평도 봤지만, 전후 서사와 인과를 따져서 주인공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태도를 잠시 폐기하고 우리는 잠시 무심한 이웃의 눈이 되어야 한다. 4컷 만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의 일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팔자가 박복한 것도 모자라 일상에서도 늘 운이 따라주지 않는 유키에를 가엾게 여기다가도 지독하게 얄궂은 상황들,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그 시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이내 숙연해질 것이다. 그에게 정신없이 닥치는 불행과 불운이 ‘고생 뒤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유키에는 ‘고생 뒤 행복’이라는 환상을 차버린다. 그녀는 인생을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지 않고, 무엇이 주어지든 인생을 음미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인생에서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되고, 뭔가를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게 된다는 걸 깨달은 이 못생기고 가진 것 없는 여자는 신파의 화신, 비극의 질주, 파괴당하지 않는 챔피언이다. 저자마저 결말을 그리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고 하니 그녀는 힘들고 보잘것없는 모든 사람의 히로인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