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November, 2014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Editor. 지은경
“내가 아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뿐”이라는 노랫말이 있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것을 아는 일이 아닐까? 미디어에서 항상 떠드는 말들은 “긍정의 힘을 믿어라” 혹은 “노력하고 끈기 있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올 것이다” 혹은 “삶에 정답이란 없다. 그저 자신의 선택대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등이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삶에도 항상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벽은 존재하며 서로를 속이고 배반하며 인간 밑바닥에 감추어진 추한 진실을 마주하고는 씁쓸해하거나 절망하게 된다. 또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그 추악한 삶 속에 속한 나 자신으로 인해 탄생하는 부조리함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일까? 알량한 지름길로 인도하는 자기계발서에 의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끝없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그냥 놔두어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어쩌면 거장의 책들 속에서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본질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관조하며 제대로 인식해보면 자신들만의 해답을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한데 지금 우리는 같이 죽어간다는 그것만으로 쌍둥이처럼 서로 닮은 것이다.”-본문 중
소설 『벽』은 사르트르의 첫 장편이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작품으로 꼽힌다. 이 책에서 작가는 극한 상황들과 절망, 부조리의 세계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한 사형수의 삶을 그렸다. 사회에 대한 벽, 가족에 대한 방, 성에 대한 내밀한 방, 젊은 시절의 방황과 고뇌를 통해 타인들과의 관계, 가족과 연인, 그리고 더 깊숙하게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주인공은 허탈해하고, 또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삶에 대한 미련을 서서히 버리게 된다. 죽음이라는 괴물의 공포 앞에서 삶은 얼마나 힘없고 무의미한지에 대해 깨닫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며 이를 평가하려 시도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삶이 하나의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더는 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생의 벽 앞에서 이 책은 매우 아이러니한 결말을 맺는다. 결국 자신으로 인해 생기는 뜻하지 않은 해프닝 앞에서 부조리함에 맞서던 주인공은 자기 자신조차 부조리함의 한 일부가 되어버리는 듯하다. 이 놀라운 반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날 수 있기를.
“내 이름은 르네, 쉰네 살이고, 고급 아파트인 그르넬가 7번지 건물의 수위 아줌마다. 나는 과부고, 못생겼고, 오동통하고, 발에는 못이 박혀 있고, 나를 혐오하는 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침엔 가끔 입에서 매머드 냄새가 풍긴다고 한다. 더구나 나는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라는 범주로 고착시킨 사회적인 믿음과 아주 잘 부합하기 때문에 내가 이토록 글에 밝은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내 이름은 팔로마, 열두 살이고, 그르넬가 7번지의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에 산다. 그러나 난 오래전부터 내 삶의 종착점이 금붕어 어항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내가 그걸 알았을까? 난 아주 영리하다. 심지어 아주 별나게 똑똑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심을 했다. 이번 학년이 끝날 때, 열세 살이 되는 오는 6월 16일 난 자살할 것이다.”-본문 중
이 책은 쉰네 살의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 소녀의 각별한 우정을 그린 책이다. 르네는 매우 박학다식한 사람이지만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볼 때 보잘것없는 추한 인간에불과하다. 팔로마는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냉소적인 시선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추함과 우스꽝스러움을 매우 면밀하게 관찰한다. 세련되고 우아한 모습 이면에 감춰진 문명화된 야만인들로 인해 이들은 불행하다. 하지만 서로를 통해진정성 있는 인간애를 찾아가게 된다. 소외받는 삶의 약자인 두 인간을 통해 그려진 인간 삶의 다양한 추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삶에서 진정 인식해야 할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다.
“형이 그 사람한테 진실만을, 정말로 그 사람에 대해 형이 생각하는 것만을 말한다면 그건 형이 마치 미친 사람하고 진지한 토론을 하는 데 동의한다는 뜻이고 형 자신도 미쳤다는 뜻일 거야. 우리를 둘러싼 세상하고도 마찬가지야. 형이 세상 앞에서 진실을 말하겠노라 고집한다면 그건 형이 세상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렇게 진지하지 않은 어떤 것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건 자기 자신이 진지함을 다 잃어버린다는 거야. 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해.”-본문 중
이 책은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 삶이 농담인지 함정인지를 알지 못하는 인간 삶의 희극성 혹은 비극성을 담은 소설이며, 쿤데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그리고 그의 문학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한다. 책은여러 사람들의 사랑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에는 진실함이 결여되거나 허무한 현실과 불안한젊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욕망과 마주한다. 삶이 이끄는 끊임없는 유혹의 순간들 속에서 인간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겨버리거나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쿤데라는 그런 인간사를 우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