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인터뷰

삶과 예술은 해프닝, 미학자 양효실

에디터: 유대란, 사진 제공: 김종우

『권력에 맞선 상상력, 문화운동 연대기』는 20세기 초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에서 한국의 두리반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문화운동을 이야기한다. 차이와 차별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다원주의 사회를 향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시끌벅적하게 밀어젖힌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힘은 예술적 상상력과 연대였다. 일상은 전속력으로 흘러가는데도 요지부동하는 세상이 싫어진 지금 저자 양효실을 만났다. 우리는 아직 문화적 상상력과 예술에 희망을 걸 수 있을까.

Chaeg: 1968 문화혁명, 네그리튀드, 히피, 펑크, 치카노, 두리반 등 책 속 문화운동은 어떻게 선별하셨는지요?
서울대에서 ‘대중예술의 이해’라는 수업을 꽤 오래 했어요. 거기서 대중문화를 다루면서 히피, 힙합, 레게, 펑크에 대해서 강의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이 네 가지가 책을 구성하는 데 가장 먼저 들어갔고,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가 왜 빠져 있느냐는 동료의 지적을 듣고 치카노에 대한 이야기를 넣게 되었어요. 그런데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꽤 재미있어서 치카노에 관한 것만 세 꼭지가 됐죠. 또 여성주의 운동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1970년대의 디너파티, 우먼하우스, 1980년대 게릴라걸스 등을 다뤘고, LGBT 쪽은 쓰다 보니까 스톤월항쟁, 액트업과 액트업 예술이 나란히 등장했어요. 두리반 챕터의 경우 두리반에 소속되었던 뮤지션 중 단편선의 노래를 원래 좋아했고, 한받 씨는 홍대에서 수업할 때 학생들을 통해서 알게 되어 인터뷰를 하고 수업에도 초청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었고, 학술지에 두리반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을 책에 넣게 된 거죠. 처음부터 계획을 잡고 죽 쓴 것이 아니었고, ‘이게 있으니까 이것도 넣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떠오르면 정리하고, 안배하고 그랬어요. 누벨바그 같은 경우엔 이 책에 어울리는지 확신이 없어서 출판사에 물었는데 바로 넣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수업 교재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게 책이 됐어요. 그런데 교재로는 써먹진 못했어요. 학생들에게 내 책을 사서 보라고 하기가 왠지 불편하고 창피하더라고요.(웃음) 내년쯤에 써먹을까 고민 중이에요.

Chaeg: 이 책은 금지를 깨트린 언어,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지요. 서문에서 “언어가 불평등한 세상을 공고히 하는 권력의 주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담론적 실천’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쓰셨어요. 이 ‘담론적 실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예를 들어, 최근 메갈리아라는 사이트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 메갈리아는 기존의 여성들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말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 ‘남근’ ‘말씀’, 이렇게 등치 되던 무겁고 강하고 단단하고 억압적인 것을 ‘자지’ ‘실좆’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어떤 언어들은 현실에서 이미 권력을 갖고 있고, 그 언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그 권력을 보증하는 게 되거든요. 그 언어를 바꾸지 않는 한, 메갈리아식으로 표현하자면, 내가 입고 있는 ‘코르셋’은, 즉 내가 갖고 있는 문제는 계속 문제로 남는 거죠. 메갈리아에서 보여주는 것은, 두려움과 공포를 갖고 살았던 사람들이 ‘남근’을 ‘자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순간 두려움의 대상이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에요. 무거운 단어들을 가볍게 만들면서 웃을 수 있고,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반복적인 과정들. 메갈리아는 일단 한국적인 여성 현실, 한국적인 문제를 표시하고, 그것을 공고히 하는 언어들을 가볍게 만들고자 해요.
담론적 실천이라는 건 미학의 후기 구조주의에서 나온 말인데 후기 구조주의자들은 언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해요. 그래서 기존의 억압적인 말하기, 진지한 말하기, 강자의 말하기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아내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런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에요. 저항하고자 했지만, 진지한 말하기 때문에 결국 이성애, 자본주의, 백인주의에 공모하는 약자들의 사례도 있지만요. 저는 트위터를 자주 훔쳐보는데 거기서 발견하는 가벼운 말들 있잖아요. ‘아이고 의미 없다’, ‘자살만이 살 길이다’ 같은. 저는 그런 말들이 ‘삶에 기여해야 하고’, ‘계속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식의 억압적인 말하기를 뒤흔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의 힘을 믿고 있는 저로서는 그런 말들이 중요한 변화의 단서가 되는 것 같아요.

Chaeg: 메갈리아가 보여주는 혐오의 수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데요. 여성혐오에 대항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이 남성혐오로 돌아선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좀 혼란스럽습니다.
저는 메갈리아를 일시적인, 일종의 해프닝으로 봐요. 메갈리아도 잘 알고 있어요. 자신들에게는 대의가 없다고 표명해요. 여성혐오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메갈리아는 현재 폭발적인 현장이 되고 있지만, 그다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메갈리아는 분노하라, 싸워라, 경멸하라, 혐오하라고 하는데 거기에 사랑, 슬픔, 연민, 이런 가치가 들어갈 자리는 없어요. 그렇지만 메갈리아의 적실성, 적시성은 되게 중요하다고 봐요. 일베의 적실성도 있잖아요. 그것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어요. 강자들에게 저항하기에는 힘이 부족하고, 즉각적으로 나의 혐오를 배설할 수 있는 방식은 약자를 짓밟는 거죠.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운동의 방식은 있어요. 메갈리아도 마찬가지고요. 자기 언어를 가지려고 하는 여성들이 규합하는 방식으로 저항 담론이 만들어지고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딜레마인 것 같더라고요. 계속 욕만 할 순 없잖아요. 그들도 고민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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