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여름 피서지로는 역시 바다나 물가가 최고라지만, 봄가을에 떠나는 나들이엔 숲만한 곳이 없다. 단풍놀이하러부러 높고 장엄한 산을 찾을 여유가 안 된다면 잠깐 동네 뒷산으로 산보를 나가보자.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짧은 산보로도 충분하다. 준비물은 편한 복장과물 한 병, 그리고 약간의 요깃거리. 그 이상의 짐을 들고는 발걸음을 옮기기도 꺼려지니 가볍게 떠나는 게 좋다. 걷다가 잠시 쉬면서 책 한 권 읽어도 좋으련만, 느긋한 산중 독서를 위해 무거운 가방을 계속 지고 다니기로 결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우리를 위해 산속에 도서관이 있다면 어떨까? 잠깐 쉬어갈까 하고 들른 오두막에 책이 가득하다면? 그런 공간이 있다. ‘고즈넉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전주의 숲속 작은도서관 두 군데를 소개한다.
전주는 호남의 대표적인 여행지다. 한옥마을은 부지가 꽤 넓은데도 주말마다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보고 즐길 거리뿐만 아니라 비빔밥, 콩나물국밥, 모주, 가맥 등 먹을거리도 풍부해서 여행하기 딱 좋은 도시다. 전주시에서 최근 독특한 투어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다름 아닌, 도서관 투어. 전주의 중앙도서관인 ‘꽃심’을 비롯한 작은도서관 몇 군데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전주에는 여행자도서관이나 팝업북 도서관과 같이 특색 있는 작은도서관이 여럿 있다. 장서가 많은 으리으리한 도서관은 아니지만 주제별로 구성된 작은 공간들은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준다. 예술전문도서관이나 정원도서관 등 한 분야를 좁고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도서관도 계획 단계에 있다. 대출·반납 업무를 하지는 않지만, 작은도서관은 마치 작은 쇼케이스 파빌리온처럼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작은도서관은 일반적인 공공도서관보다 생활에 밀착된 문화·교육 공간으로, 2020년 기준 전국에 6,474곳이 운영되고 있다. 작은 공간이더라도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으면 책을 가까이 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큰 도서관을 더 많이 짓지 않고 굳이 ‘작은’ 도서관을 동네마다 설치한 데에는 재정적 부담이 적고 관리가 편리하다는 이유가 우선일 테다. 하지만 작은 것에는 정서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분위기 좋은 아지트 같은 단골집이나, 작아도 좋은 전시를 하는 전시장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서 작은 게 아니라, 작아서 더 유리한 점을 최근의 공립 작은도서관들은 어느정도 활용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너머 장을 보러 가거나 산책을 나가는 일상 공간에 책을 끼워 넣는 것이다. 편안한 휴식 시간에 독서까지 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건지산숲속작은도서관은 전주시 북쪽, 전북대학교 학술림 내부에 있는 도서관으로, 진정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산중의 오두막 같다. 도서관 입구 옆에는 음수대와 더불어 강아지 물그릇이 놓여 있는 데다가, 부지 옆에 화초들을 심은 작은 텃밭이 있어 정감이 간다. 데크에 서서 숨을 한 번 크게 쉬면 한칸짜리 도서관 사방을 둘러싼 숲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곧게 뻗은 편백나무다. 건지산은 많은 시민들이 가족 및 친구와 함께 산책하러 찾아오는 곳이다. 바로 근처에 부지가 넓은 체련공원과 음악당, 동물원이 있어 사실 꽤 북적거리는 동네이기도 하다. 2013년에 개관한 건지산 숲속작은도서관은 이 주변을 찾는 많은 시민들에게 뜻밖의 독서와 잠깐의 휴식을 제공하는 절묘한 자리에 있다. 체련공원에서도, 학술림 입구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이곳은 아주 예쁘고 세련된 공간은 아니지만, 힘든 산행 중 주요한 목에 있는 산장처럼, 편안하게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기도록 만든다.
올봄에 문을 연 학산숲속시집작은도서관은 전주 남쪽의 평화동 인근에 있는 야트막한 산 모서리에 위치한 공간이다. 차 한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크지 않은 연못을 빙 둘러 걸을 수 있는 데크 산책로는 인근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산책로 옆쪽에 있는 작은 표지판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면 학산숲속시집작은도서관이 나온다. 안에 들어서면 시원한 창으로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나무와 하늘, 약간의 물이 모두 보이는 이곳은 마치 어린 시절 동화를 읽으며 꿈꾸던, 나무 위에 만든 작은 아지트 같다. 게다가 시집만을 소장하기 때문에 나만의 비밀장소 같은 간지러운 감성이 더 짙다. 정면으로 배치된 시집들 중 읽고 싶은 것을 골라 테이블이나 계단, 다락에 앉아 읽으면 시상이 마음 깊이까지 들어오는 듯하다. 한국 시집뿐만 아니라 번역된 시집이나 외국 시집 원서, 시화집도 있어 여러 번 방문해야 그 진가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숲속에 있는 작은도서관은 마치 여독을 푸는 산장이나 목 좋은 곳에서 풍류를 즐기는 누각 같다. 심지어 화장실도 따로 없는 조그마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학산숲속시집작은도서관에서는 산책로 입구에, 건지산숲속작은도서관에서는 체련공원과 동물원이 만나는 지점에 공공 화장실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전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산속의 책 공간에 들러보는게 어떨까. 어린이가 있는 가족이라면 더욱 좋다. 두 도서관 모두 바로 인근에 어린이 숲 생태 놀이터가 조성되어 있어, 자연지형과 목재나 밧줄 등으로 만든 놀이 기구와 함께 몸도 움직여 볼 수 있다. 모든 산책은 좋은 쉼이지만, 작은도서관에 잠깐 들르는 산책은 보통의 산책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것은 마치 한 권의 책이 주는 즐거움과 닮아 있다. 없을 땐 몰랐지만 일단 경험하니 이전과 전혀 달라지는, 좋아서 또 읽고 싶고, 또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여유의 경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