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특별기획

산과 강 사이 인간의 공간 로르 코난 도서관

에디터. 서예람 사진. © Stéphane Groleau 자료제공. ACDF Architecture

캐나다 퀘벡 주는 그만의 정체성과 역사를 지켜온 것으로 유명하다. 캐나다 땅에서 탐험가들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정착한 지역이지만, 영국이 아닌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놓이면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한다 Je me souviens’라는 표어는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을 통해 캐나다에서 프랑스적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퀘벡인들의 오랜 정신이었다. 문화적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퀘벡 전체의 교육 수준을 올리고 이중언어를 공식화하려 노력한 덕에 지금은 캐나다 정부가 모든 서비스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제공하며, 퀘벡 빠진 캐나다는 상상하기 힘들어졌다. 오랜 세월 겪은 진통은 비단 뿌리와 전통만을 지키기 위함은 아니었다. 퀘벡은 자연미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으로도 손꼽힌다. 산과 숲을 품은 로르 코난 도서관 Laure-Conan Library에서는 가만히 흐르는 강물을 감상할 수 있다. 그 물결을 따라 시선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자연을 기억하는, 가장 인간적이고도 생태적인 공간이다.
세인트로렌스강St. Laurence River은 오대호 중 하나인 온타리오Lake Ontario에서부터 북동쪽으로 흘러 대서양까지 무려 3,000km 넘게 이어지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물줄기다. 강줄기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퀘벡 주의 작은 도시 라 말배La Malbaie는 19세기 중반에 조성된 캐나다의 초기 휴양지 중 하나로, 2016년 기준 주거 인구가 8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군락이다. 불어로 ‘나쁜만(灣)’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명은 퀘벡 시의 창립자로 알려져 있는 17세기 프랑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탓에 이 근처에 정박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1년도에 지어진 로르 코난 도서관 건물은 시청을 겸하고 있는데, 한국의 웬만한 시청과 비교하면 참 작지만, 현대적인 동시에 자연친화적이다.
로르 코난 도서관은 강과 도로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2층짜리 건물이지만 경사가 큰 탓에 1층에는 강, 2층에는 도로 방향으로 출입구가 나 있다. 도로가에서 보면 어두운 톤의 낮고 긴 건물이 강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듯 보인다. 도시의 휴양 시설들이 높게 지어지거나 깎아지르는 절벽에 위치해 강을 조망하는 것과 달리, 이 도서관은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강과 가장 가까이에 있다. 그러면서도 도시에서 보이는 강의 모습을 방해하지 않게끔 건물을 낮게 펼쳐놓았다. 지면에 찰싹 붙어있는 건물은 마치 캐나다 역사 내내 계속되었던 문명과 자연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간과 강과 숲, 돌 등 자연물의 상호 로르 코난 도서관 작용은 건축적인 소재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이런 콘셉트는 특히 외벽에서 잘 드러나는데, 아래층 시청 건물은 밝은 색의 암석으로, 위층은 어두운색 나무로 마감했다.
도서관 내부의 두드러진 특징은 외벽이 엄청나게 두껍고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도 내부를 나누는 기둥이 없다는 점이다. 딱 하나, 천장에서 시작해 도서관과 아래층의 시청까지 관통하는 투명 기둥이 있다. 이 기둥은 투명한 탓에 수평의 공간을 수직으로 나누기보다는 오히려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태양광을 공간 깊숙이 끌어들인다. 기둥 대신 명확한 용도에 따라 문으로 나뉘어 있어, 구획된 공간 안에서의 자유도나 에너지효율을 높였다. 도서 열람이나 개인 공부, 토론 등을 할 수 있는 서가는 강을 마주하고 있는 벽면을 따라 가장 넓게 구획되었다. 옆으로 펼쳐진 창을 따라 의자와 가구들이, 안쪽에는 책장이 위치한다.
이곳을 설계한 ACDF 건축사무소는 도서관 건축에 있어 환경친화적인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그를 따랐다. 크기가 크지 않을 것, 에너지를 절약할 것, 지역에서 생산된 자원을 활용해 탄소발자국을 줄일 것. 지역에서 생산되는 목재를 외벽에 충분히 활용한 덕분에 건설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많았다고 한다.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퀘벡 주의 목재 산업에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천혜의 자연과 그 아름다움에 기대어 살아가는 휴양지인 만큼, 이곳의 공공도서관과 시청은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겸손한 자세로 자연과 도시 모두를 끌어안는다. 그 때문에 이 도서관은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여러 개의 문을 지나 서가로 들어갈 때까지 반대편 벽의 창을 통해 강물과 건너편의 숲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휴양지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으면 좋을까? 좋은 호텔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늘어지게 자는 휴식에 비할 바는 아닐지 몰라도, 열린 공간으로서 도서관이 주는 그만의 휴식이 있다. 여행객의 발걸음을 유혹하는 으리으리한 도서관보다는 작지만 자연에 가까운, 단순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휴양’에는 훨씬 탁월할 것 같다. 눈 쌓인 겨울에도, 푸르른 여름에도, 단풍 물든 가을에도, 도서관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저만의 철학과 개성을 담은 모습을 지켜낸다. 도서관을 포함한 풍광도 자연스럽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던 캐나다 최초의 프랑스어권 여성 작가의 이름을 딴 도서관은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고 사색하기에 딱 좋다. 여기에 맘에 드는 책 한 권까지 함께라면 두 고두고 기억할 만한 휴가가 되지 않을까! 갈 수만 있다면 당장 떠나고 싶다.
January22_SpecialReport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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