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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6
사랑이 우리를 파멸로부터 구원할 수 있을까?
Editor. 지은경
농사에 관한 작은 잡지를 만들며 만났던 농부들을 보며 자신이 놓치고 있는 본질이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것을 내려놓을 마음도 없는, 즉 이도 저도 아닌 경계선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 있는 것 같아 심장이 자주 벌렁거린다.
영화 <아가씨>의 원작 『핑거스미스』를 쓴 작가 사라 워터스는 레즈비언과 게이 역사소설에 관한 연구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당시 사회 풍경이나 패션, 색감 등을 실제 영화를 보는 듯 상상하게 만들어준다. 고아로 태어나 평생 소매치기로만 살아온 여자 수, 그녀를 꼬여 한 젊은 상속녀의 하녀로 들어가 자신이 그녀에게 구혼하는 것을 돕게 만드는 젠틀맨, 그리고 시골의 순진하고 병약한 상속녀 모드의 이야기는 이미 영국 BBC의 드라마 <핑거스미스>와 한국 영화 <아가씨>를 통해 알려졌다. 최근 큰 화제를 모은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는 근대 일본과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각색된 것이고, 원작인 책은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모드는 런던에서 온 하녀가 신기한 나머지 갖가지 질문을 해댄다. 그런 모드를 가르치기 시작하는 수는 점차 이 순진하고도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애틋한 연민과 알 수 없는 감정을 갖게 된다. 수는 모드와 결혼한 젠틀만을 미워하기 시작하고, 젠틀맨과 결혼한 모드는 결혼 생활의 어떠한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수의 손길만을 갈구한다. 젠틀맨은 자신과 결혼한 모드를 정신병원에 가두는 계획에 돌입한다. 여기서부터 엄청난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속고 속이는 관계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세 사람, 게다가 작가는 19세기의 영국 사회를 대단히 어둡고 더러우며 공포스러운 곳으로 묘사하고 있어, 소설을 읽는 내내 따뜻한 감동 따위는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몇 겹의 포장지로 싸인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진실함을 내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결여된 어떤 감정의 희망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19세기라는 제법 먼 시간의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이 느끼는 자기연민, 외로움, 괴로움과 인내, 침묵, 의심과 경계, 그리고 음모라는 감정들은 현대의 사람들과 비교해도 전혀 다르지 않다. 세상이 참 그렇다. 누구도 함부로 믿어서도 안 되지만, 누구든 하나는 믿어야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는 법이다. 이 소설을 두고 일반적인 음모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평보다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이 참 못마땅하다. 물론 어느 소설보다도 진하게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그들의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되지만, 결국 이 소설이 진심으로 갈구하는 것은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사랑뿐’이라는 간단한 조건이다. 영화 <아가씨>의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많은 부분에서 영화와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를 향한 감정의 변화와 의구심들이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어 오히려 영화보다 실재감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 영화와는 사뭇 다른 결말도 재미있게 비교해볼 만하다. 오히려 잔인한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훨씬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소설은 총 3번 시점이 달라지는데, 이 또한 끝으로 갈수록 더욱 긴장감이 넘친다. 그 이유는 예상치도 못한 반전을 수없이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고 스스로 자신을 추슬러야 하는 냉정한 세상이지만, 우리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존재는 진정 ‘사랑’이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