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eg’s choice
책이 선택한 책
January·February, 2019
사랑을 책으로 배웠어요
Editor. 김지영
주말이면 한가로이 만화방으로 향한다.
사람들이 제각기 짝지어 다니는 거리를 샌들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안경까지 장착하고 걷고 있노라면 자유롭기 짝이 없다.
시청 앞 광장이 붉은 물결로 일렁였던 2002년, 월드컵의 강렬한 기운을 더욱더 뜨겁게 달궜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던 때였다. 지금은 감정의 여러 단계를 설명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당시 감정의 1단계인 본능만 아는 꼬꼬마였던 나는 사랑이란 복잡미묘한 감정에 관해 생각조차 못 했다. 그렇게 감정을 천천히 알아가던 어느 날, 학급문고에 꽂혀 있던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발견했다. 원래 책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림이 많고 글이 적다는 매력에 끌려 책을 빌렸다. 침대에 엎드려 그림에 집중하며 책을 보던 중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울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연락이 끊겨 헤어졌던 파페가 자전거를 타고 포포의 곁을 지나갔고, 파페를 알아본 포포가 안간힘을 써 그를 잡으려는 장면이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열 살 인생에 그토록 강렬한 슬픔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랑이란 감정을 ‘두근거림’이라고만 표현할 줄 알던 내게 이 책은 ‘그리움’ ‘슬픔’이라는 감정도 사랑에 포함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그 후에 ‘파페포포’ 시리즈가 출간될 때마다 혼자 서점 한 귀퉁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감정에 관해 생각하거나 내가 아닌 타인에 관해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마 내 또래라면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책 대여점이 이 시리즈 책을 대여섯 권씩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여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파페포포 신드롬’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돌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지금도 파페포포를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무릎을 치며 반가워하니 말이다. 한 예로 이 시리즈가 열풍을 일으키자 출판계가 그렇듯 이와 비슷한 형식의 책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당시 유행했던 싸이월드에서도 비슷한 감성의 글과 그림이 만연했다. 아쉽게도 출판가에 ‘N세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지만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심승현 작가의 ‘파페포포’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설렘 포인트를 잘 집어내고, 사물이 가진 의미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놓고, 동물 또는 사물에 감정을 이입하여 우리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투영하는 등 그의 주특기에 녹아들어 마치 연애소설이나 순정만화를 접한 듯 설렐 수 있기 때문이다.
‘파페포포’ 시리즈는 2002년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시작으로 2003년 『파페포포 투게더』 2007년 『파페포포 안단테』 2009년 『파페포포 레인보우』 2012년 『파페포포 기다려』가 출간됐다. 그후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2017년에 『사랑까지 딱 한 걸음』으로 돌아와 2030세대의 어릴 적 추억을 자극해 감성을 끌어올렸다. 이번 2018년 12월에 출간된 『파페포포 리멤버』 역시 그 흐름의 한 축으로, 지난 10여 년에 걸쳐 작업한 시리즈 안에서 심승현 작가가 직접 선별한 에피소드 50편과 새로운 에피소드 다섯 편을 담았다. 그가 그간 다뤘던 사랑이나 운명, 인생이라는 소재는 2000년대나 2010년대, 혹은 시간이 제아무리 많이 흐른다 한들 결코 달라지지 않는 것이기에 지금 보아도 낯설지 않다. 또, 한 에피소드의 만화가 나오고 해당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짧은 글을 싣는 기존의 구성을 유지해 ‘파페포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온다.
함께 만들어 낸 아름다운 추억조차 별로 없을 만큼
미지근한 사랑을 하다가
그녀가 떠난 뒤에야 내가 미워졌다.
마음에 가득한 사랑을 말할 용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냥 이렇게나마 네 곁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마음만은 꼭 전하고 싶었는데.
“그거 알아?
추억이 없다면그리움도 없다는 걸…”